Hyundai Heritage #1
자동차의 한반도 상륙과 자동차 산업의 태동

한반도에 상륙한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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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농공상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랫동안 이 땅에 이어진 신분계급이었습니다. 농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상업활동을 천하게 여기다 보니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의 도로와 운송수단은 대단히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도로가 발달하면 외침을 당했을 때 적의 진군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오히려 험한 길을 정비하지 않고 그냥 두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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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화도조약 이후 미국, 영국, 독일 등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고 사람들의 의식도 변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자전거와 인력거를 시작으로 대중적 교통수단이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899년에는 전차와 기차도 부설 되었습니다. 좁고 굽은 길들이 넓고 곧게 바뀌며 전신주가 부설되고 전차도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수도인 한성은 빠르게 변모해나갔습니다.

국내에 자동차가 도입된 것으로는 1903년 황실에서 고종황제 제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 공관을 통해 들여온 포드 모델 A가 첫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차는 러일전쟁의 혼란 속에서 소실되었고 1911년 황실용 2대와 총독부 1대가 도입되어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대수는 3대가 되었습니다. 이후 부유층의 자가용과 운수업체의 영업용 차량이 도입되기 시작하고 판매와 서비스 회사까지 생겨났습니다.
노선 버스와 함께 시작된 자동차의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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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으나 가격도 비싸고 대수도 많지 않아 일반인들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1928년에 노선 버스가 도입되면서 일반 시민들도 자동차를 타볼 수 있게 되었고 자동차는 근대화된 교통수단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1940년대 들어서서는 부분적인 부품생산과 정비, 자동차 재생 공장 등이 생겨났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실질적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공장이 설립된 것도 1940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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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일제치하에서 벗어나던 1945년에는 자동차 보유대수가 7,326대로 늘어났습니다. 광복 이후 미군이 진주하면서 자동차보급이 늘어나 1949년에는 1만 6,431대로 증가했습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그나마 미약하던 국내 산업기반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미군과 유엔군이 가지고 들어온 차량과 부품, 폐차와 드럼통 등이 재생차의 재료로 사용되면서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이 태동했습니다.
1940년, 현대자동차의 실질적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 ‘아도서비스’ 설립
자동차 산업의 태동,
그리고 역사를 시작한 현대자동차

미군의 군용차량을 재생하는 공장으로 1954년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와 ‘신진공업사’가 설립되었고 이듬해에는 ‘국제차량공업사’를 운영하던 최무성 삼형제가 수공업 형태로 제작한 시발택시가 등장했습니다.
시발택시는 1955년 8월 광복 10주년 기념으로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우리나라 자동차공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62년에는 부평에 건설된 근대적인 공장에서 조립생산된 새나라자동차가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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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닷산 블루버드 310을 반제품 형태로 수입하여 부평 공장에서 조립한 새나라 자동차의 국산화율은 5% 정도였습니다. 새나라자동차는 당시 군사정권의 4대 의혹 사건 중 하나로 떠올랐고 결국 외환부족으로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1965년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한 신진공업사는 1966년 상호를 신진자동차로 변경하고 일본 도요타와의 기술제휴로 ‘크라운’, ‘코로나’, ‘퍼블리카’를 생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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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설립되었고 제 2차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중화학공업 정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포드와의 기술제휴로 ‘코티나’와 ‘포드 20M’을 생산하며 자동차 산업에 진입했습니다.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거쳐 1962년 K-360이라는 3륜 트럭으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기아산업은 1969년 ‘타이탄’ 트럭을 통해 4륜차 생산에 돌입했습니다. 1965년 설립된 아시아자동차는 피아트와 제휴를 맺고 1970년부터 피아트 124를 생산하며 우리나라 자동차공업은 4원화 체제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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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나라 회사들은 모두가 기술제휴선으로부터 부품과 반제품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조립생산하는 SKD(Semi Knock Down) 방식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자립기반이 부족하여 외국 자동차회사에 많은 것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내 자동차회사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부품 국산화율을 차근차근 높여가면서 제조기술을 습득하여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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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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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코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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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여자동차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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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작으로 만들어지던 시발택시의 생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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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자동차에서 조립생산한 피아트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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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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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작으로 만들어지던 시발택시의 생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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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라자동차 부평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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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산 블루버드를 도입해 만든 새나라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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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타던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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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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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 인천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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