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30: 작가 이윤희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도자기로 표현하는 작가

이윤희, 욕망과 불안으로부터 치유를 위해 긴 여정을 떠나다.

이윤희의 <신곡>은 단테의 것과는 달리 한 소녀가 등장합니다. 소녀는 욕망과 불안으로부터의 치유를 위해 떠나는 긴 여정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과 대면합니다. 각각의 문제는 삶과 죽음, 선과 악 같은 상반된 양면성을 상징하는데, 여기서 영화적 내러티브가 가진 일방적 전개와는 다르게 관객의 다양한 선택과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습니다. 관객은 작품에 수동적으로 끌려가기 보다 자유롭게 이야기 속을 배회하고, 양면성의 선택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0과 1의 디지털 세계, 즉 웹 브라우징과 닮았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양자택일이란 조건과 거기서 발생하는 연속적 선택이 무한대의 조합을 이루며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소녀는 작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이며, 그런 점에서 <신곡>이 이윤희의 자화상 정도로 비춰질 수 있지만, 이야기 전개의 주도권을 관객에게 넘김으로써 소녀의 정체는 메타적 속성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신곡>의 내러티브와 소녀의 정체성은 해체되고 관객의 머릿속에서 재조합되며 자신만의 고유한 <신곡>을 완성합니다.
마샬 맥루언(Marshall McLuhan)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남기며 미디어가 담고 있는 내용 보다 미디어 자체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어쩌면 <신곡>의 진정한 의미는 섬세한 형식미나 내용적 측면이 아닌 그 이면에 감춰진 알고리즘적 구조가 아닐까요. 관객에게 그 틀 안에서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만, 때로는 선택의 기로에서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의 과정은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치유에 도달하는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작가와의 대담

Q. 주로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주로 세라믹을 이용한 입체 작업으로 활동 중이며, 수공예를 기반으로 설치 작업, 다품종 소량생산의 디자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습니다.
Q. 세라믹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세라믹은 한계가 정말 많은 재료입니다. 다루기도 쉽지 않지만 세라믹 작업은 속임이 없습니다. 매일 살펴 보아야하고 재료를 이해하며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 진실함이 좋았습니다.

Q. 작품의 형식이 매우 정교합니다. 작품의 제작 과정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우선 리서치→아이디어 스케치→원형 제작→몰드 만들기→슬립케스팅→성형→건조→1차 소성→드로잉→시유-2차 소성→드로잉→3차 소성의 과정을 거치며 완성됩니다. 좀 더 복잡한 패턴장식이 필요한 경우, 드로잉과 3차 소성의 과정이 반복됩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관심 가는 것에 대해 집중적이고 방대한 리서치를 해나가다 보면 정보가 쌓이고, 자신이 관심을 둔 것의 실체와 방향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가 자연스레 구분되는 것이지요. 그런 식으로 나만의 취향이 쌓여가고 작업을 하기 위한 바탕 재료가 모아집니다. - 이윤희 -

Q. 직접적인 영향인지 있는지 모르겠지만 종교적 색채가 있는 듯 합니다. 혹시 종교가 있으신가요? 종교적 영향이 아니라면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종교적 신념이 어느 정도 작품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지만 교리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 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양의 중세 건축물이나, 감로탱화에서 영감을 받곤합니다. 그것이 작품에서 풍기는 종교적 아우라를 형성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밖에도 애니메이션, 영화, 음식과 문화사 등에도 관심이 있고, 어릴 적부터 이미지를 모으는 걸 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동화책은 읽지 않고 오려서 모아놓고, 공부하라고 사준 백과사전도 다 오려두곤 했습니다. 그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관심 가는 것에 대해 집중적이고 방대한 리서치를 해나가다 보면 정보가 쌓이고, 자신이 관심을 둔 것의 실체와 방향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필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가 자연스레 구분되는 것이지요. 그런 식으로 나만의 취향이 쌓여가고 작업을 하기 위한 바탕 재료가 모아집니다.

Q. 작품 <신곡>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작품 <신곡>은 말 그대로 단테의 소설 <신곡>시리즈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상상을 펼친 작업입니다. 사실 가장 끔찍하긴 해도 <지옥편>이 가장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단계의 층위들이 있습니다. 소녀가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욕망과 불안을 치유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스토리 텔링의 성격이 강합니다. 사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애니메이션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매체적 한계 때문에 모두 담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원없이 다 담아낼 수 있어서 애니메이션을 한번 준비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소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입혀졌다는 얘긴데, 대충 어떤 내용인가요?
<신곡>시리즈는 하얀밤 잠들고 싶어도 잠들지 못하는 밤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옛날에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 소녀는 신탁에 의해 예정된 욕망과 불안으로 행복하지 못했고 행복을 찾아 길을 나서게 됩니다. 그 길에서 소녀는 여신이 예비해둔 이런저런 문제에 맞닥트립니다. 삶과 죽음, 천상의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 선과 악. 이렇게 하나의 사물현상이 마음의 꼴에 따라서 이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다른 것을 뜻하기도 하지요. 양면성은 마음의 양면성이며 삶의 양면성이며 존재의 양면성이기도 합니다. 이 여정을 다 지나쳐온 소녀는 그 길 의 끝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평안을 얻습니다. 마침내 감각적인 자기를 벗고 진정한 자기를 덧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Q.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반드시 전달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나의 이야기는 욕망과 불안과 치유의 서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알고 보면 영웅 신화와 성장 서사에 바탕을 둔 원형적인 이야기를 변형하고 변주한 것입니다. 욕망과 불안은 인간의 본질이며, 업이 삶의 본질인 것. 결국 삶이란 업으로부터 해탈하는 과정이며, 삶에서 죽음으로 승화하는 과정이며, 있음에서 없음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Q. 예술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찰나의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임스 우드의 소설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화가건 시인이건 소설가이건 간에 예술가로부터 우리가 입은 가장 큰 혜택은 우리의 공감을 확장하게 된 것입니다. 예술은 삶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그것은 경험을 확대하고 같은 인간들과의 접촉을 개인적 운명의 테두리 너머로 확장하는 방법입니다.”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brilliant 30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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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자기_120 x 120 x 25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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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자기_120 x 120 x 25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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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세부사진)
자기_120 x 120 x 25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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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자기_가변크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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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자기_가변크기, 2013
Profile

이윤희는 주로 세라믹을 이용한 입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설치, 디자인 및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녀는 주로 단편 또는 장편의 문학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서사를 형성합니다. 작품들의 형식이 마치 중세 유럽의 회화나 불교의 감로탱화를 떠올립니다. 주로 그것들이 웅장한 스케일의 신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긴 내러티브를 담는 이윤희의 작품과 형식적 유사성을 갖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 결과입니다. 그녀의 관심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불안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 그러한 인생의 업으로부터의 해탈, 즉 치유까지 뻗어갑니다. 그녀에게 예술이란 단순히 창작 욕구의 해소나 재능 발휘의 수준을 넘어 업으로부터의 해탈에 이르는 수행이자 치유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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