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30: 작가 오용석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을 창작하는 비디오 콜라주 작가, 오용석

오용석, 끝없이, 편집없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그의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영화의 특징, 즉 영화가 관객의 몰입을 막는다는 것은 적어도 오늘날의 대중들이 즐기는 내러티브 영화에 적용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몰입이 되는 정도를 넘어 몇 시간씩 앉아서 집중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영화 말고 또 있을까요. 몽타쥬 기법, 즉 서로 다른 장면들 간의 충돌은 관객으로 하여금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과는 달리 우리의 인식이 너무나도 탄력적으로 장면 간의 마찰을 소화해냅니다.
작가 오용석의 작품 ’끝없이’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이 말 그대로 끝없이 지평선 또는 수평선을 중심으로 펼쳐져 나갑니다. 아무런 이야기도 설명도 없습니다. 오로지 끝없는 하늘과 지구표면의 접선이 마치 불도저처럼 인간이 구성한 의도와 내러티브를 무참하게 박살낼 뿐입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동시에 자기비판(self-criticism)적입니다.
영상 일반의 특징인 프레임과 몽타쥬는 지시하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거기에 작가의 의도가 녹아있습니다. 오용석은 그 의도를 자신의 의도로 영상을 이용해 비판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가지는 차이점은 그 기준이 인간중심에서 물질로 이동하였다는 점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편집이 영상의 가상성을 인멸하기 위해 이뤄지는 것과는 달리 그의 편집은 영상의 가상성을 오히려 폭로합니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인간이 세상을 대부분 주어진 것(Datum)에서 만들어진 것(Factum)으로 바꾸어왔다고 합니다. 즉, 자연환경에서 인공환경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연과의 대립에서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세계는 누군가의 의지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되지 않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용석 작가의 작품은 영화의 가상성 또는 허구성 폭로를 통해 세상에 몰입되는 인간의 모습을 엑스레이로 비춰줍니다.
작가와의 대담

Q. 어떤 종류의 작업을 하시는지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A. 주로 싱글 채널, 다채널 영상과 설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좀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사진, 영상의 콜라쥬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어떤 과거의 사진이나 영화, 드라마의 한 장면을 선택하고 그 장면과 같은 장소 또는 유사한 형태의 풍경이 담긴 영상을 이어 붙이는 작업입니다. 결국 한 장면에 과거와 현재 또는 영화와 일상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입체경(stereoscope)과 흡사하게 생긴 작업도 만들었는데 양 눈에 각각 다른 영상이 맺히는 구조이지만 동시에 보았을 때 시지각이 교란되는 설치물이었습니다.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제가 집중한 것은 사각형 프레임이었습니다. 관객은 네모난 프레임 바깥의 것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보여주지 못하는 사각형 프레임 바깥을 이어나가고 싶었습니다. - 오용석 -
Q. 이번 전시 작품 ’끝없이’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이 작품은 모두 영화의 가장 마지막 컷만을 가지고 제작을 하였습니다. 모두 과거에 제작된 해외영화들인데 한국영화는 한편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제가 필요로 하는 장면이 국내 영화들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마지막 엔딩 장면이다 보니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이나 자막들도 나옵니다. 어쨌건 마지막 장면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끝없이 계속 이어집니다.
일종의 클리쉐(cliché)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과거 영화들의 엔딩장면에서는 롱샷(long shot)으로 촬영된 자연풍경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러한 장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수평선 또는 지평선이 존재한다는 거였습니다.
여기서 시도한 것은 수집된 모든 장면들을 영화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게 수평선이나 지평선을 중심으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분명 다른 장면들이지만 연결되어 보이게끔 말입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대부분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그 음악까지도 연결시켰습니다. 일단 가능한 모든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을 취합했고 연결 가능한 것들은 빠짐없이 다 사용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들이 있을 수 있지만 무언가를 선택하고 빼는 과정 자체에 누군가의 의도나 생각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생각했고, 저는 그러한 주관적 의도를 최대한 배제하고 싶습니다.

Q.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A. 기획과정에서 특별히 어떠한 메시지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뭔가 관객들이 특정한 틀에 갇혀 해석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짜여진 누군가의 의도를 나타내기보다 보는 관객에게 자유로운 해석을 열어두고 싶습니다. 메시지나 내용 보다는 매체적 속성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원래 전공은 회화였는데 영화감상을 무척 좋아했었죠.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제가 집중한 것은 사각형 프레임이었습니다. 관객은 네모난 프레임 바깥의 것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보여주지 못하는 사각형 프레임 바깥을 이어나가고 싶었습니다. 사용하는 소스는 다양합니다. 오래 전 촬영한 가족사진, 우연히 발견한 사진, 드라마의 장면, 영화 등을 사용해서 지금까지 계속 프레임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영상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A. 앞서 언급하였지만 원래 전공은 회화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소질이 있으니 당연하게 미술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회화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재학시절 영화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영상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만 영화는 아무래도 규모가 크고 자본이 많이 투입되다 보니 비디오를 사용하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그렇게 해서 2002년부터 작가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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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of the Future. Ed 5. 2009.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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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of the Future. Ed 5. 2009. 싱글 채널 비디오. 2분 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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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of the Future. Ed 5. 2009. 싱글 채널 비디오. 2분 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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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Ending. Ed 3. 2011. 싱글 채널 비디오, 루프 랜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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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rizontal Line Without Cut Part 1-4. 2012-2014. 3 채널 비디오, 루프 랜덤
Profile

제주 출생 오용석 작가는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05년 <새로운 작가: 드라마>, 대안공간 풀, 2010년 <클래식>, 16번지 갤러리 현대, 2011 <스퀘어 앤 스퀘어>, 페더레이션 스퀘어, 멜버른 호주, 2014 <거의 모든 수평선 외 2편>, 아트스페이스 정미소 등이 있습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2006년 <상하이 비엔날레>, 상하이 미술관 그리고 같은 해에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7년에는 <터모 클라인>, ZKM Center for Art and Media, 칼스루헤, 독일, 2008년에는 <세비야 비엔날레>, CAAC, 세비야, 스페인 그리고 같은 해에 <CINEMA SIM>, Itau Culture, 상파울로, 브라질, 2009년에는 <가상선>, 갤러리 현대, 서울, 2011년에는 <모스크바비엔날레>, 아트플레이 디자인센터, 모스크바, 러시아, 2012년 <(불)가능한 풍경>, 삼성미술관 플라토, 서울, 2013년 <미래는 지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서울 외 다수의 전시 경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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