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30: 작가 강석호
강석호, 두 사회의 궤적을 사유하는 작가

강석호, 진정한 공존의 사회를 꿈꾸는 작가
강석호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치는 미물에도 날카롭고 고집스러운 예술가의 시선을 보내는 작가입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많은 생명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만은 이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다층적 이해보다는 이들의 우위에 서서 파괴하고 교란합니다.
강석호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Trans-Society Project>는 인간의 문명사회를 상징하는 책과 그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의 사회와 비슷한 고등한 군락을 이루는 흰개미의 사회가 만나는 작업입니다. 인간의 문명을 담은 책의 문자는 흰개미의 먹이가 되어 그 원래의 의미를 식별할 수 없게 변형됩니다. 또한, 자연의 먹이가 아닌 인공의 재료로 만들어진 책을 먹이로 삼아야 하는 흰개미 역시 환경에 맞게 신체의 색깔과 습성이 변화합니다. 언뜻, 두 사회는 충돌하고 반목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은 두 사회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해와 공존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를 인간이 생성한 체계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인간 외의 다른 생명들이 우리에게 문명의 길을 내주고 환경을 제공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흰개미 역시 작가, 즉 인간이 제공한 환경에 적응하며 그들만의 고유한 길을 만들어 나가며 사회를 구성합니다.
그들이 책에 남긴 족적은 인간의 문명사회와 얽히고설키며, 궁극에는 두 사회가 같이 공존하는 형상이 됩니다. 작품에 담긴 두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 궤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람객들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고, 미래에도 살아가야 할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하는 일종의 명상과도 같은 시간에 빠져듭니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작품의 모든 것을 통제하며 절대적 지위를 가지는 반면에, 그는 상황을 조정하고 관찰하며 작업과정, 그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도공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우리 사회의 체계에 대한 신념이 희미해져가고 있는 오늘날, 강석호가 희망하는 사회는 독단에서 벗어나 무수히 얽힌 구조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동하는 조화의 산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술품의 미감(美感)에 대한 고민은 오랜 예술의 역사를 통해 수없이 변화하고 진화하였습니다. 다시금, 예술품의 장식성이 부각되는 요즘의 미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강석호의 예술은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던 부분을 환기하고 나아가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기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작가와의 대담

Q. 주요 작품인 <Trans-Society Project>에 대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A. <Trans-Society Project>는 기존의 예술작품이 예술가가 직접 제작하고 구성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논리와 구조를 작품으로 들여와 구성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주요 소재인 책은 인간 문명사회의 상징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세계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인간사를 대변하는 책에 다른 개체 사회의 이입을 시도하였습니다. 고등화된 무리 생활을 하는 곤충인 흰개미를 책에 이주시켜 서로 무관할 것 같은 두 영역의 사회가 한 공간에서 만나도록 하였습니다. 책을 먹이 삼아 살아가는 흰개미의 사회가 점점 번성할수록, 책의 텍스트는 점점 지워집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인간 사회가 다른 사회와의 연관성을 통해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인간이 보면 우연처럼 보이나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닌 생명 체계를 작품에 도입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같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흰개미가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 동기입니다. -강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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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의 제작과정에 대해 설명 부탁 드립니다.
A. 우선, 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징 중 하나가 언어와 문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기 작업에서 책을 선정할 때는, 인간의 언어와 문자를 극명하게 담고 있는 사전과 백과사전을 주로 선택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코란, 불경, 성경과 같은 종교의 언어를 담은 책과 인간의 유물을 소개하는 도판을 담은 책들로 그 선택을 확장했습니다. 책이 선정되면 흰개미가 책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조성해줍니다. 이후,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통해 흰개미의 습성과 책이 변해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이 기간이 짧게는 10개월 길게는 3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흰개미가 책에서 어느 정도의 흔적을 남겼다는 판단이 들면 이들을 다른 책으로 이주시키는 작업과정을 거칩니다. 경우에 따라서, 책의 흔적이 미흡하다 싶으면 다시 흰개미를 들여오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하지 않기로 판단이 들 때까지, 흰개미의 사회 터전을 만들어 주고 기록하고 촬영하기를 반복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책에 남은 흰개미의 흔적을 정리하고 이들이 남긴 흔적 중에서 조형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이 드는 부분을 선택하여 액자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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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 설명을 들어보면, 작가님의 작업에서는 작가의 역할이 최소화되고 오히려 작가가 관찰자에 더 가까운 듯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 부탁 드립니다.
A. 저 역시 예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에 의해 완성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작품이 억지스럽고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하여 작가가 직접 그리고 깎고 다듬으며 만든 작품이 넓은 의미의 사회를 담는 데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인간이 보면 우연처럼 보이나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닌 생명 체계를 작품에 도입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같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흰개미가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 동기입니다. 작가인 저의 주요한 역할은 흰개미가 책에서 살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흰개미의 생태계를 주시하고 기록하는 관찰자입니다. 저는 흰개미가 인간 문명의 상징인 책에서 사회를 형성하며 남기는 흔적의 과정에 작품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더하여, 저의 역할은 발견자이기도 합니다. 흰개미가 흔적을 남긴 책에서 어떤 페이지가 더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발견하고 선택하는 역할도 합니다.

Q. 새로운 생각과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오나요?
A. 일상적 경험이라고 봅니다.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경험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나고 결합하여 작품의 영감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 이면에 감춰진 부분을 찾는 것도 작품의 새로운 생각으로 작동합니다.
Q. 향후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A. 현재 진행하고 있는 흰개미 프로젝트는 내후년쯤이면 일단락됩니다. 이 작업은 전시된 작품 외에도 작업을 진행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글로 기록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벌써 100페이지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는 시점에 이 기록을 단행본으로 출판할 예정입니다. 흰개미 프로젝트 외에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도서관에서 수집한 먼지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 이것을 발전시킨 작업을 흰개미 프로젝트 다음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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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Society #9. 2013. 책, 나무, 유리, 아크릴 플라스틱. 33 x 14.5 x 4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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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Society #1. 2013. 책, 아크릴 플라스틱. 18 x 18 x 2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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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Society #13. 2014. 책, 스틸, 아크릴 플라스틱. 15.5 x 15.7 x 20.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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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Society #7-2. 2012. 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 45.5 x 37.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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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Society #15-2. 2013. 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 65.1 x 51.1 cm
Profile

강석호는 중앙대학교 서양화 학과와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Trans-Society Project>(갤러리 자인제노, 서울, 한국, 2012), <Hubris Disembodied>(갤러리 보라, 서울, 한국, 2011), <강석호 개인전>(갤러리 정, 서울, 한국, 2009)이 있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START>(사치갤러리, 런던, 영국, 2014), <Korea Tomorrow 2014>(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디자인 미술관, 서울, 한국, 2014), <프레 드로잉 비엔날레-공모전>(리 앤 박 갤러리, 파주, 한국, 2013), <아트 쇼 부산 2012-아시아 아티스트 어워드 그룹 쇼>(벡스코, 부산, 한국, 2012)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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