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30: 작가 이세현
붉은색으로 물든 현대사회를 그리는 작가

이세현, 사회적 풍경속에 현실을 드러내다

이세현 작가는 화면 전체가 붉은 색으로 물들여진 일종의 산수화를 그리며, 이것을 “사회적 풍경(social landscapes)”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이미 유효기간이 끝난 이데올로기가 한국에서는 아직도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그 저변에는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러한 민족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화면 전체를 붉은 모노톤으로 채웁니다. 그의 거대한 작품들은 자연의 모습과 함께 어디에선가 보았을 법한 마을이나 거리의 풍경들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즉 그는 ‘산수(山水)’라는 장르의 형식을 통해, 분단된 남한과 북한의 모습을 하나로 합쳐 놓은 듯한 ‘풍경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한 개발로 사라져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두려움이 함께 담겨 있기도 합니다. 즉 겉으로는 아름답게 묘사된 화면이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 파괴에 의한 디스토피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예술적 역설입니다.
이세현의 풍경화는 남한 사회에서는 민감할 수 있는 분단과 독재 및 국토의 난개발 등 사회정치적 이슈를 풍경화 안에서 담아내면서 한국의 문화, 정서, 환경 등을 표현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전통산수의 이상적 관념이 현대의 현실적 이념으로 대체되었고, 형식상으로 보자면 관념의 추상성과 사실적 대상 묘사가 결합된 것입니다.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추상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 서구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들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현실을 구성하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등장하며 이야기의 전개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모습들은 산의 기본 윤곽을 이루는 형태로 바탕을 이루지만, 채색이 되고 산이 온전한 형태를 잡아가면서 그 뒤에 은폐되기도 하고 형태끼리 교차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즉 이세현의 회화는 현실의 은폐와 드러냄을 동시에 보여주는 다양한 “사회적 풍경화”가 되는 것입니다.
작가와의 대담

Q.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오나요?
한국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일 년만 지나도 변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그 장소에 대한 추억은 생생하게 실재하는 반면 그 대상들은 다 사라져버려서 비실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에 유골을 어머니의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에 뿌렸는데, 유학가기 전에 인사드리러 갔더니 그곳은 이미 완전히 개발되어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당시 제가 갖고 있던 한국의 자연에 대한 기억은 이러한 충격의 기억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고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것, 이 두 가지가 제 마음 속 기억의 자연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현실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들이 배어 있기 때문에 문득문득 드러나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 이세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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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은 그러한 작가님의 회화를 스스로 “사회적 풍경”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영국에서 작가님의 개인전이 열렸을 때 어느 평론가는 “매우 정치적인데도 또한 동시에 매우 회화적”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 그러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회적 풍경”에 관해서는 전방에서 군생활을 했던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야간 보초를 설 때 적외선 투시경으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의 자연은 슬프고 비극적인 현실에서 너무도 아름다웠고, 이때의 상반된 심상과 이미지들은 묘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회화예술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이데올로기의 대결 구도 안에서 입장이 다른 대상을 색안경 끼고 보듯이 바라봅니다. 저는 제가 속한 사회의 모습을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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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다면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풍경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눈에 보이는, 실재하는 모든 것이 저에게는 풍경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물질적 풍경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랑•삶•죽음과 같은 추상적인 것들도 저에게는 모두 풍경입니다.

Q. 작가님의 작품들은 대개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들입니다. 그런데 한 개의 캔버스로 충분해 보이는 작품들을 여러 개 합쳐서, 그것도 어떤 것들은 배열이 일정하지 않게 연결해서 하나의 거대한 전체를 만드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연결해서 하나의 거대한 전체를 만드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제가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풍경들은, 단일한 사건이나 현상 같아 보이는 것 이면에 서로 다른 것들이 교차하여 존재하는 것들도 있고, 반면에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어떤 연속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모든 것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연결성들을 가지고 있고,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존의 속성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Q. ‘레드 콤플렉스’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색상과 관련해서는 따로 중점을 두고 계신 조형적 특징이 있나요?
최근 몇 년간의 제 작품들은 모두 빨간 색으로 그려졌지만, 그 중에서도 몇 가지의 다른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캔버스의 하얀 바탕 위해 빨간 섬들을 그린 것과 이 빨간 섬들을 다른 풍경과 함께 모아서 그린 것이 있으며, 또 다른 방식은 화면이 온통 빨갛게 그려진 풍경이나 대상들 사이에 흰색 갭을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다양한 색과 추상적 형태들을 가지고 작업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는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Q. 작가님의 예술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현실 속에 이상향이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사실 유년기에는 접하게 되는 모든 것이 이상향이고, 성장하면서 되돌아보는 것 역시 노스탤지어로서의 이상향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현실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들이 배어 있기 때문에 문득문득 드러나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현실은 은폐와 드러남의 교차이며, 제 작품은 현상적인 것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brilliant 30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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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Red-195>
린넨에 유채_40x20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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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Red-185>
린넨에 유채_200x20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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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Red-162>
린넨에 유채_200x30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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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Red-108>
린넨에 유채_200x20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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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Red-107>
린넨에 유채_200x20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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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Red-198>
린넨에 유채, 200 x 200 cm, 2014
Profile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영국 런던 첼시예술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2001년도에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일상>전과 2012년에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렸던 <플라스틱 가든>전을 제외하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8회에 걸쳐 열렸던 개인전은 모두가 <비트윈 레드>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취리히 미키 윅 킴 컨템포러리 아트, 2007 / 런던 유니온 갤러리, 2008 / 밀라노 존카 & 존카 갤러리, 2009 / 뉴욕 니콜라스 로빈슨 갤러리, 2011 / 암스테르담 부제트이씨갤러리, 2014 등이 있습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퓨쳐패스>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베니스, 2011, <평화의 바다> 인천아트플랫폼, 2011, <전조> 스페이스 코튼시드, 싱가폴, 2012, <유희적 저항> 캔버스 인터내셔날 아트, 암스테르담, 2012, <(불)가능한 풍경> 플라토, 서울, 2012,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 중국 원저우, 2013, <오늘의 진경 2013> 겸재정선기념관, 서울, 2013, <시각과 맥박> 학고재 상하이, 2013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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