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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lliant 30: 작가 고산금

고산금, 그리지 않은 텍스트 회화를 시각화하는 작가

La Vie Mode D’emploi (인생사용법) Georges Perec, Excerpt from Ch. 1(좌, Pp. 15-146), Ch. 2(우, Pp. 146-279). 2012.<br>설치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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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금, 그리지 않은 텍스트 회화: 진주 결정체로 치환된 내면의 시각 세계

고산금의 회화 작품에는 마땅히 보여야 할 그림이나 이미지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의미나 내용을 알 수 있는 글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전통 회화처럼 평면의 사각형 캔버스를 사용하며, 흰색의 바탕 위에 흰색의 진주를 배열하고, 빛과 그림자에 의한 흑백의 단일한 톤만으로 구성합니다. 이러한 외형적 시각 경험의 측면을 강조하는 일부에서는 고산금의 작품을 미니멀 회화나 한국의 단색화를 계승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고산금 작가 역시 이러한 조형적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은 일상에서 접하는 텍스트의 다양한 문제의식들로부터 출발하며, 시각 이미지와 텍스트가 넘쳐나는 현대사회를 접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고산금 작가는 문자로 표현된 언어를 진주 알갱이로 바꿔서 보여주는 시각 번역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문자화된 모든 텍스트는 사건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녀는 신문이나 소설뿐만 아니라 시의 어구나 노래의 가사, 심지어는 법전의 문구들을 진주 알맹이로 변화시켜서 마치 점자와도 같이 새로운 텍스트를 탄생시킵니다. 고산금 작가는 사회에 대해 느끼는 모호한 감정들이나 모호한 사회적 결여를 담아내면서도 진주 텍스트 밑으로 은밀히 가려둡니다. 이것은 실명을 경험했던 그녀가 회복될 때 사물들이 처음 보이던 상태와 유사하며, 그녀가 예술을 통해 세상과 접하는 방식입니다. 사건을 기록한 사진의 망점과도 같은 고산금 작가의 작업은, 눈물의 결정체처럼 보이는 진주를 통해 마치 성경의 스크립트처럼 일종의 성스러움을 전달합니다.

작가와의 대담

  • 작가 고산금

    Q. 고산금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설명 부탁 드립니다.

    A. 제 작품은 문자화된 텍스트들과 문장의 구조를 진주로 대체하여 시각적인 전환을 보여줍니다. 원래 텍스트에 관심이 많아서 어릴 적부터 다독을 했었는데, 뉴욕 유학 시절 신문을 열심히 구독했습니다. 저는 인문학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귀국 후에는 한국의 근대문학을 탐독했고 요즘은 프랑스 문학 등 유럽의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주 알맹이들로 변환되어 표현되는 텍스트는 작품도 단순하고 과정도 단순하지만 쉽게 코드화되어 금방 읽히는 친절한 작품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세상에 대해 정보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뉴스와 신문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접하는 세계에 대한 모호한 감정, 그리고 세계가 지닌 모호함을 명확한 언어적 논리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해 보이는 작품 속에 스며든 나의 예술적 정서와 감정은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 Q. 회화를 전공했지만, 작품의 제작 과정은 진주 알갱이들을 하나하나 붙여가는 일종의 “수공예”적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소재를 사용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뉴욕에서 대학원 시절에 놀이 삼아했던 작업이 진주 텍스트 작업이었습니다. 유학 당시에 외국인 친구들과 서로 시를 읽어주며 놀던 것이 작품화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명확한 논리로부터 얻은 결과가 아닙니다. 뉴욕에서 실명했을 때 병원에서도 이유를 몰라서 집에만 틀어박힌 생활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내 심신이 가장 약한 상태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전에 해봤던 적이 있었던 작업이었습니다. 신문을 통해 뉴스를 읽지 못하고 귀로 듣기만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제게는 세계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완전하진 않지만 시각을 서서히 되찾으면서 눈에 아른거리며 보이는 상태가 지금의 제 작품과 유사하게 보였고, 다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생각의 출발점은 표면적인 것들에 대해 다르게 보고자 하는, 혹은 다르게 보이는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부터 시작해서 그와 관련된 다양한 텍스트들입니다. -고산금-

작가 고산금

Q. 작품의 결과물에 대해 한편에서는 한국의 단색화 혹은 모노크롬을 계승한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다양한 색을 사용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단적으로 얘기하면 붉은색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도립병원 (현재의 의료원) 관사 생활을 했는데, 이때 병원 안에 위치한 관사를 드나들 때마다 마주쳤던 핏빛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Q. 고산금 작가의 새로운 생각의 출발점은 무엇인가요?

A. 표면적인 것들에 대해 다르게 보고자 하는, 혹은 다르게 보이는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부터 시작해서 그와 관련된 다양한 텍스트들입니다. 그리고 영향력을 끼친 인물을 꼽자면 마르셀 뒤샹과 린다 프란시스입니다.

작가 고산금

Q. 이후의 작업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계신가요?

A. 그동안 10년간 꾸준히 작업을 해오다가 지난 2년 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올해부터는 여러 전시회의 계획이 잡혀 있어서 다시 그동안 읽은 책들을 가지고 작품을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제는 “경제”와 “익명”에 관한 것들입니다. 개인의 생활마저도 감시되는 요즘 현실에서의 익명성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획이 아닌 작은 소망이 있다면, 내 작품이 나중에 사회적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Q. 고산금 작가의 예술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A. “삶”입니다. 내 삶의 일차적인 목적은 작업이 아니고, 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과 훈련 속에서 터득한 것입니다.

  • Small Code of the Civil Procedure (민사소송법), Excerpt from Pp. 1702-1721.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153 x 97cm

    Small Code of the Civil Procedure (민사소송법), Excerpt from Pp. 1702-1721.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153 x 97cm
  • Small Code of the Civil Procedure (민사소송법), Excerpt from Pp. 802-817.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153 x 97cm

    Small Code of the Civil Procedure (민사소송법), Excerpt from Pp. 802-817.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153 x 97cm
  •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가변.

    비틀즈의 노란 잠수함.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가변.
  • La Dentelliere (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Excerpt from Pp. 69-107.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각 45 x 60 cm (파넬당 135 x 60cm)

    La Dentelliere (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Excerpt from Pp. 69-107.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각 45 x 60 cm (파넬당 135 x 60cm)
  • La Vie Mode D’emploi (인생사용법) Georges Perec, Excerpt from Ch. 2(우, Pp. 146-279) 보정.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각 204 x 156 cm (파넬당 34 x 26 cm)

    La Vie Mode D’emploi (인생사용법) Georges Perec, Excerpt from Ch. 2(우, Pp. 146-279) 보정. 2012. 4mm 진주구슬, 접착제, 나무 파넬에 아크릴, 각 204 x 156 cm (파넬당 34 x 26 cm)

Profile

작가 고산금

고산금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미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뉴욕에서 11년 동안 생활한 뒤 귀국하여, 텍스트와 형상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며 진주를 통해 시각적 변환을 이루는 작품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1997년 뉴욕의 Second Floor Gallery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이래, <Mist of Sings>(쌈지 갤러리, 서울, 한국, 2006), <Mist of Sings> (국립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갤러리, 경기도, 한국, 2007), <Typography+Transliteration>(닥터박 갤러리, 경기도, 한국, 2011), <Homage to you>(선컨템퍼러리 갤러리, 서울, 한국, 2012) 등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가져왔고, <Korean Project>(C5 Art Beijing, 북경, 중국, 2007), <언어적 형상, 형상적 언어: 문자와 미술전>(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2007), <Daily Life in Korea>(퀸즈 갤러리, 방콕, 태국, 2008), <한국의 단색화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 2012), <White & White>(아렌시에라 디빌라 보르게제미술관, 로마, 이탈리아, 2013) 등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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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Society Project. 2011-2015. 혼합재료. 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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