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30: 작가 박윤경
언어와 이미지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

박윤경, 객체와 주체가 사라진 평등한 회화를 만들다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회화과를 졸업한 촉망 받는 아티스트.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라는 사회적 위치를 잠시 내려놓고 영국으로 과감하게 유학을 떠난 박윤경 작가. 이미 ‘기성 작가’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던 그녀가 익숙한 환경을 뒤로 하고 과감한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새로운 곳에서 ‘회화 그 자체(painting itself)'에 대해 탐구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2차원 평면회화를 지탱하는 기본 요소로만 여겨지던 색채, 선, 붓질 등을 회화의 주체로 올려놓음으로써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회화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을 선보이며 그 탐구의 과정을 증명합니다.
캔버스 천이나 종이만을 고집하던 전통적 회화는 실크, 쉬폰 천, 샤워커튼 등의 투명한 재질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숨겨져 있던 회화의 뒷면을 관객에게 개방합니다. 열린 회화 공간에는 작가가 선택한 색채와 붓질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작가의 행위와 작품의 과정을 관객과 공유합니다.
현대미술이 관객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도한지도 어느덧 반세기 가까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미술에서 관객은 이방인입니다.
박윤경 작가는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신조어를 작품공간에 끌어들입니다. 동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인터넷 문화를 작품에 반영하며 페인팅 뿐 아니라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구현합니다. 기하학적 문양의 텍스트는 인터넷의 신조어를 도입한 것으로, 작가는 이것을 작품에 도입해 깔개와 도장을 통해 텍스트를 표현하여 넣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예술가가 그 시대와 호흡하고 반응할 때, 비로소 예술은 삶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박윤경 작가는 시대의 변화와 배경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며 그 시대의 사유를 작품으로 재현합니다.
작가와의 대담

저는 지금도 회화요소가 그 자체로 독립된 주체성(subjectivity)을 획득할 수 있는 그림을 구현하기 위해 실험 중이며, 평면회화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 박윤경-
Q.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예술매체를 다루고 있지만, 2차원의 평면회화 작업이 가장 시각적으로 돋보이고 또한 작품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박윤경 작가에게 회화란 무엇일까요?
저는 회화를 전공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회화적 코드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풀어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2차원 평면회화 안에서 전통적 페인팅 요소인 색채, 선, 붓질, 화면, 등이 단순히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는 것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들에게 부수적인 존재가 아닌 회화의 주요한 의미를 부여하여 ‘회화’ 자체의 본질과 존재, 그리고 그 의미를 다양하게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Q. <AAAGHHJLO>를 비롯한 회화 작품들에 전통적 재료인 캔버스 천이 아닌 쉬폰, 실크와 같은 투명 재료를 쓰고 있는 점이 독특합니다. 박윤경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회화와 이 특성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투명한 재료를 선택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그 과정 자체를 고스란히 관객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에요. 작품의 완성된 이미지만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뒷면에 드러난 시간에 따른 필지와 중첩된 색채를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숨겨져있던 작품 과정까지도 관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공간에서 관객은 항상 수동적인 위치였지만 제 작품에서는 관객이 중요해요. 저에게 작품의 완성단계는 작품이 갤러리 공간에 걸리는 순간이 아니라 관객이 작품의 과정을 인식하는 그 시점이 바로 작품의 완결입니다.

Q. 작품에서 관객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에서 관객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지 박윤경 작가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인터넷 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정보를 많이 공유한 사람이 시대의 권력자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인터넷을 통해 모두가 정보를 균등하게 배분하고 공유하는 정보민주화 시대입니다. 저는 이것에 영감을 받았어요.
현대미술이란, 작가가 동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시각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동시대 문화에 대한 이해를 어떤 방식으로든 작품을 통해 제시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저에게 현대적 예술 공간이라는 것은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객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권위를 나누는 곳입니다. 모두가 어울리는 공간이 구현될 때, 예술 공간도 민주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를 사회와 분리된 신화적 존재로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본인은 작품의 모든 면을 관객에게 오픈함으로써 전통적 의미의 회화에서 탈피하여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소통하는 예술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
AAAGHHJLO
박윤경_ 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_193.9 x 130.3cm_2014
-
Being Invented
박윤경_Chiffon, Painting Maker, Acrylic on Parallelogram Shaped Canvas_95x140cm_2014
-
PPYONHAANAKAE HAGOJAHAL THARUMINIRA
박윤경_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_2014
-
Three infinities
박윤경_Acrylic, Painting Marker on Silk_162.2x112.1cm_2014
-
Nara Malssami Duenggugae Dalla
박윤경_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_120x180cm_2013
-
Nara Malssami Duenggugae Dalla
박윤경_Acrylic, Painting Marker on Chiffon_120x180cm_2013

Q. 작품의 주요 요소인 언어와 문자가 지니는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요?
유학 생활 당시, 언어가 다른 친구들과의 소통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어요. 그러나, 언어가 다르니 오히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게 돼요. 언어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 상대방의 몸짓, 손짓 등을 유심히 살피며 타인을 이해하려고 해요. 이런 점에서 볼 때, 소통은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태도로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 소통이 안 될 때도 많지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 한 것은 계급을 초월한 소통의 염원을 담은 것이나 이 언어를 통해 서로 뜻이 통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소통과 대화는 언어와 문자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Q. 새로운 생각,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오는가요?
가장 진솔한 작품은 개인적 경험을 담은 것이에요. 인터넷으로 밖에 소통을 할 수 없었던 시기와 유학시절의 예술에 대한 고민 그리고 엄마가 되면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사회에 대한 관심은 고스란히 작품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일상과 경험이 작품으로 표출되는 것이 작가에게는 필연적인 것이지요.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brilliant 30에 대한 소개
바로가기 >brilliant 30 NEXT: 작가 유승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