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30: 작가 이종건
문화적 맥락에서 벗어난 사물들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가

이종건, 건축에 타문화에서 발생된 문양을 새겨넣다


이종건 작가는 여느 집들의 내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만한 부분들을 파편화하여 전시장 내부에 설치합니다. 이로써 ‘집’으로 상징화될 수 있는 물리적•심리적 문화 양식들이 시간적 차이와 공간적 이동에 따라 다르게 발생하는 문화적 맥락에 대한 문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집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보자면 하나의 건축물로서 특정한 공간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공간 주위에서 형성된 사회와 커뮤니티의 문화적 특성을 나타냅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영어에서 ‘Home’이라는 단어가 ‘House’라는 물질적 실체와 함께 ‘고향’이라는 의미를 함께 드러내고 있듯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거주할 뿐만 아니라 되돌아가야 할 정신적인 고향을 의미합니다. 또한 ‘가정’, ‘주택’, ‘고국’, ‘고향’, ‘발상지’ 등 다양한 뜻을 보면 '고유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의미하는 ‘향수(鄕愁)’는 영어와 독일어에서도 각각 ‘Homesick’와 ‘Heimweh’라는 단어와 동일한 뜻을 가지며, 중국의 고전 초한지의 ‘사면초가’라는 말이 이러한 개념의 오랜 역사를 증명해줍니다. 즉, ‘집’이란 단순한 거주의 공간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공유하며 그 문화의 고유성을 상징합니다.
한 장소의 건축물이 가지는 문화적 문맥은 공간적 이동에 의해 원래의 가치가 변형되며, 이는 곧바로 가치의 상실을 가져옵니다. 이종건 작가는 이러한 양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실제 대상이나 디자인이 가진 형태를 변형시키고 왜곡시킵니다. 그가 사용하는 CNC라는 디지털 기계는 전체 구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도록 하면서도, 전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형태의 윤곽들이 지닌 불완전한 요소들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도구입니다., 호텔이나 예식장, 혹은 백화점처럼 서구에서 유입된 공간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익숙한 현대적 공간들이지만, 대개 고대 그리스의 신전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양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러한 화려함은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건축물들이 본래 지니고 있던 맥락과는 상관 없는 무의미한 장식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 즉 특정 장소에서 시간이 흐르며 형성되어온 자연스런 문화적 맥락에서 이탈되어, 그 외형만 옮겨진 건축물은 원래의 가치와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이종건 작가의 작품 제목이 시사하듯,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작가와의 대담

Q. 작업 변화에 있어서 새로운 생각의 출발점은 무엇인가요?
어릴적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서로 다른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의 형태가 나타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잦은 이사를 통해 “집”을 옮겨 다니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근현대의 다양한 주택 건축 양식들이 원래의 장소로부터 옮겨지면서 외형만 유지하고 있는 점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간과 시간이 가지는 문화적 맥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집으로 대표될 수 있는 한 공간은 사적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사회•문화적 아이콘이라는 점을 작품에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실 그 표현 양상은 다르지만 이전 작업과의 맥락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본래 가지고 있던 건축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건축이나 조각 등 세부적 장르의 문제보다 문화라는 더 넓은 측면에서 접근해왔습니다.

Q. 그렇다면, 이종건 작가에게 있어 작품과 전시는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저에게 있어서 전시 공간은 마치 연극무대와 같이 일부분을 통해 전체를 상상하게 만드는 작업의 공간입니다. 제가 전시장에 설치하는 가구들의 파편적 부분들 역시 가구의 온전한 전체나 그 가구가 위치한 공간 전체를 자연스럽게 함께 떠올리도록 만듭니다. 그러다가 관람자는 문득 이 친숙한 광경으로부터 어떤 낯섦을 마주하게 됩니다.
'집'이라는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장소적 속성뿐만 아니라 그 장소를 규정하는 다양한 문맥적 특성들을 포괄하며, 이러한 문맥들이 형성되기 위해선 시간의 여정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시간의 흐름 동안 문화가 형성되면서 사회의 집단적 기억이 형성되고,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 기억들을 환기시키는 것이 제 작업의 모티프입니다.
그 때의 낯섦은 새로운 것으로부터의 낯섦이 아닌, 고유한 것이라고 여겼던 익숙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언캐니(기이함, 묘함, uncanny; Unheimlich)'한 낯섦이죠. 익숙한 것들 속에서 공간적시간적 어긋남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낯섦입니다. 이 때의 공간과 시간은 문화나 기억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장소적 속성뿐만 아니라 그 장소를 규정하는 다양한 문맥적 특성들을 포괄하며, 이러한 문맥들이 형성되기 위해선 시간의 여정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시간의 흐름 동안 문화가 형성되면서 사회의 집단적 기억이 형성되고,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 기억들을 환기시키는 것이 제 작업의 모티프입니다. - 이종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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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룻바닥에 장식적 문양을 넣어서 전시장의 바닥보다 약간 높이 설치하는 것에도 특정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까? 밟지 못하는 바닥이란 유물화되고 신성화된 물신의 대상이 될 뿐인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건축과 마루와 카펫이 외면적 양식의 이식에서 발생하는 탈문맥화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어서 유사관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페르시아의 이국적 카펫은 외부 자연을 개인적 공간으로 가져와서 누리고자 했던 유토피아적 염원이 담긴 인공정원을 모티프로 합니다. 평면의 문양을 실내의 카펫까지 옮겨둔 것이죠. 카펫은 실내 공간의 장식을 위해 벽에 걸리기도 하고 바닥에 깔리기도 합니다. 저는 건축물의 구성 요소들 중에서도 마룻바닥 표면이 그 시간의 흔적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들과의 유비적 관계를 이용해서 작업을 하고, 전시장의 바닥 표면으로부터 구분되도록 간격을 두어 깔아둡니다. 어떤 관람객들은 밟아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큐레이터들은 손상이나 파괴를 걱정하지만 저는 괜찮다고 말해주곤 합니다. 그래야 제가 의도한 시간의 흔적이란 것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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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다면 전시장 벽면에 설치한 작품들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카펫에 사용되었던 문양들은 벽지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특히 벽지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닳아서 없어지는 대상물입니다. 시간이 형성해온 문화적 맥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간 이동된건축적 양식들의 외형들은 그 시간차를 고려하지 않지요. 이러한 선상에서 벽지가 아닌 건축물 혹은 집들의 모형을 만들어서 창이라는 프레임으로 가두고 벽에 걸어두는 것은, 실내지만 외부로 연결되는 지점을 보여줌으로써 외부도 아니고 내부도 아닌 중첩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전략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실된 의미를 복원하며 그 과정을 관람객들과 나눌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는 것이지요.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예술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brilliant 30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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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Sky>
앤틱 마루에 새김, 소나무, 합판, 에나멜 페인트_180x378.5x7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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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Sky>
부분_180 X 378.5 X 7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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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Where We Are Not>
앤틱 마루에 새김, 수성 페인트, 참나무 몰딩_272x160x13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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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from in Between>
소나무, 단풍나무, 종이에 프린트_82×82×7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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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ramid>
목판화_109x122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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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e of Paradise>
앤틱 마룻바닥에 새김_243 x 274 x 8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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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ORROW 2014 설치전경
Profile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로드 아일랜드 스쿨 조소과에서 유학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공간에서의 성장과 공부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고유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의 탈맥락화를 주제로 다루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적 건축물이나 기념비가 본래의 장소나 문맥으로부터 벗어나 이전되면서 상실하는 문화의 고유성에 관심을 가지고, 주거공간이자 건축공간인 ‘집’에 대한 한 개인의 경험과 인식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키는 작품들을 보여줍니다. <Almost Home>(금호미술관, 서울, 2012), <I Was There>(두산갤러리 뉴욕, 미국, 2011), <Notes From In Between>(허드슨 워커 갤러리, 메사추세츠, 미국, 2011), <Extraction>(송은 갤러리, 서울, 2007) 등의 개인전과 함께 <Korean Eye: Energy and Matter>(사치갤러리, 런던, 미국, 2012), <B19>(휴매너티스 갤러리, 롱아일랜드 대학, 브루클린, 미국, 2012), <Casting Memories>(아트 게이트 갤러리, 뉴욕, 미국, 2011), <Epilogue / On The Border>(경기도미술관, 안산, 2011) 등 2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2012년도에는 금호영아티스트로 선발되어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던 이종건 작가는 2013년부터 서울대 조소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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