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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lliant 30: 작가 정혜정

여행을 통해 현대사회의 질서와 시스템을 탐구하는 작가

<호락질호> 나무배_360x200cm_협업작업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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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정, 사회의 제한과 규정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다

<바람이머무르는곳(移颱院)이방인의집(異胎院)> 낮_이태원거리_2012
<호락질호> 나무배_360x200cm_협업작업_2014

우리는 매일 지나치는 일상과 주변 환경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그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더 이상의 존재적 아우라는 없습니다. 우리가 속한 시대적 코드 안에서는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모든 사물을 교환가치의 저울 위에 올려둡니다. 강, 하늘, 공기, 바다와 같은 자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금전으로 전환이 어렵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역시 비판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적 시대질서로 정립된 인간의 인식이 수용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의 묘사에 불과합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감각적 기관을 통해 인식하는 것들은 존재가 아닌 존재자입니다. 다시 말해 가시적인 사물들의 물리적 형태를 존재자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반대로 존재는 마치 영혼과 같은 비가시적인 것으로, 존재자의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기에 교환가치의 잣대 위에 놓일 수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과 전혀 다른 코드의 세계가 있고 새로운 가치질서가 부여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작가 정혜정은 물성탐구와 시공간의 기록을 통해 근대자연과학과 자본주의적 에피스테메가 망각한 존재적 가치의 부활을 시도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이전에 대한 향수나 회귀보다는 굳어진 사회적 코드의 유연화이고, 삭막한 이성중심사회가 잃어버린 감성의 회복입니다.

*에피스테메 : 특정시대의 문화를 규정하는 인식체계를 지칭함.

작가와의 대담

<손금지도 #1> 출판물_트레싱지에 인쇄_15x21cm_150p_2012

Q. 작품에 대해 소개를 부탁합니다.

이태원에 잠깐 사는 동안 “이태원”이라 적힌 이동식 나무집을 만들어 그 지역 일대를 끌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만나게 된 사람들의 손을 트레싱지에 기록하여 아트북 형식으로 만든 작업이 ‘손금지도#1’이 된 거죠.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손금지도#3’에서는 각 사람들의 손금을 종이에 색연필로 옮기는 작업을 했습니다. 손금 위에 당시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의 내용들을 텍스트로 적기도 하였고 손금을 길로 표현하여 그 주변에 산과 강을 그려넣기도 했습니다. 사실 ‘손금지도’는 완결된 작업이 아니라 계속 진행중인 작업입니다. ‘손금 지도’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도시와 인간의 관계, 개인과 도시의 관계, 역사와 현재의 관계입니다. 물론 손금이 가진 미학적 요소에 끌렸던 부분도 있지만 저에게는 손이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자 운반체입니다. 손을 통해 제가 생각하는 도시와 인간 그리고 시간이라는 요소들을 장소마다 새롭게 조합하고 싶습니다.

작가 정혜정 스틸 이미지

‘랑랑’은 한강에서 했던 작업의 총체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인식하는 한강이란 항상 제한적이고 어찌 보면 일면적입니다. 저는 그러한 제한이나 규정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해킹과도 같은 개념이지요. 저는 동료 작가와 호락질호라는 배를 만들어 잠만경, 망원경, 회전 거울, 회전의자, 중첩 드로잉 기구 등 다양한 장비들을 설치했고, 그 배를 타고 한강의 면면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압구정동 한강에 가면 <저자도>라고 불리는, 지도에서는 사라진 작은 삼각주 섬이 있습니다. 거기서 라디오 송신기를 가져가 라이브 방송도 했었죠. 당시의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여 ‘랑랑 상상박물관’이라는 싱글채널 비디오를 만들었었고 이후 갤러리에서 상영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율적인 주체로서 인간이 누려야 할 시각적 권리를 찾았으면 하는 것의 저의 바람입니다. ‘나’만의 시점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여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정혜정 -

작가 정혜정 스틸 이미지

Q. 작품의 모티프는 어디서 얻나요?

저는 어떠한 컨셉이나 형식을 구상할 때, 영감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고 해서 무작정 작업에 돌입하지는 않고 일단 저의 생각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관련된 키워드와 키워드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죠.
저는 작업실을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고, 작품을 보관해두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과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습니다. 다양한 것들을 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난 경험들의 기록이 저의 작품이 됩니다.

작가 정혜정 스틸 이미지

Q.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우리가 막상 세상을 우리의 눈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상태를 규정지어진 방향으로만 보게 길들어져 있어요. 사람들이 자율적인 주체로서 인간이 누려야 할 시각적 권리를 찾았으면 하는 것의 저의 바람입니다. ‘나’만의 시점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여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작가 정혜정 스틸 이미지

    Q. 작품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술 작업을 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전혀 다른 계기로 인해 나만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취미가 스쿠버다이빙인지라, 대학 시절에는 작업보다 여행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스쿠버다이빙 강사 자격증이 있을 정도로 자주 바다를 찾았었죠. 그 때 물 속에서의 경험이 어쩌면 제 작품활동의 동기를 부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과는 달랐던 물 속에서의 시간, 풍경, 생물체들이 매우 인상 깊었고, 그러한 시공간적 체험을 떠올려 긴 드로잉을 제작하고 그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저의 작품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 작가 정혜정 스틸 이미지

    Q.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여러가지 인재로 인한 사고나 특히 제가 좋아했던 가수 신해철의 죽음을 보면서 무엇보다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저에게 있어 작업이란 것은 특정 시점에 예측하지 못한 여러가지 상황에 처하고 내가 가진 생각들을 적절하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입니다.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더 많은 경험들과 생각들을 표현해보고자 합니다.

  • <호락질호>

    나무배_360x200cm_협업작업_2014

    <호락질호>
  • <호락질호>

    나무배_360x200cm_협업작업_2014

    <호락질호>
  • <바람이머무르는곳(移颱院)이방인의집(異胎院)>

    낮_이태원거리_2012

    <바람이머무르는곳(移颱院)이방인의집(異胎院)>
  • <손금지도 #1>

    출판물_트레싱지에 인쇄_15x21cm_150p_2012

    <손금지도 #1>
  • <손금지도 #2>

    출판물_47x63cm_책커버_2012

    <손금지도 #2>
  • <손금지도 #3-1>

    종이에 색연필_20x20cm_2013

    <손금지도 #3-1>
  • <손금지도 #3-2>

    종이에 색연필_20x20cm_2013

    <손금지도 #3-2>
  • <손금지도 #3-3>

    종이에 색연필_20x20cm_2013

    <손금지도 #3-3>

Profile

작가 정혜정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Geneva University of Arts & Design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습니다. 그녀는 여덟 차례의 개인전과 19번의 단체전 참여 외에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등 다양한 행사에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2009년 부터 2012년까지 일현 트래블 그랜트 대상 수상, 아르코 미디어 배급선정,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작가선정, 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지원프로그램 선정, 현대카드/캐피탈 아트프로젝트 선정 대상이었으며, 금년에는 퍼블릭아트 매거진 선정작가 및 서울문화재단 다원예술지원프로그램 선정 (공동기획) 등의 경력으로 예술문화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정혜정은 매우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가입니다. 영상, 사진, 책, 드로잉, 조형물, 설치 등 특정 매체로 그녀를 소개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여행’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여행이란 흔히 생각하는 관광의 차원이 아닌 리서치이자 해킹이며 무정부적 공간으로의 침입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한강, 국도와 같은 일상공간을 평범하지 않은 시선으로 접근합니다. 거기에 남은 흔적들을 기록하고 재구성하여 인간과 도시, 도시와 한 개인,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발견합니다. 그녀의 작업은 항상 진행형이고 시리즈로 나타납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는 완결된 형태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장소와 시간에 따라 또한 그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의 끊임없이 변이됩니다. 또한 관람객들과의 소통을 갖고 그 경험을 또 다른 버전의 작품에 반영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작품 역시 작가와 함께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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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dge of Paradise> 앤틱 마룻바닥에 새김_243 x 274 x 8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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