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30: 작가 임채욱
한지의 구김으로 현대적 진경산수를 산출하는 작가, 임채욱

임채욱, 상반된 것들의 균형 위에 자리 잡은 현대적 진경산수
임채욱 작가는 미대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해오는 여타의 작가들과는 상당히 색다른 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재학 시절부터 공모전을 통해 장관상을 수상하며 벤처 사업가로 10여 년간 활동해온 것입니다. 그가 사업을 접고 다시 작품 창작의 세계로 돌아온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전업 작가 이외의 삶을 사는 동안의 경험들은 그의 현재 작업에 큰 밑거름이 됩니다. 그가 대하는 모든 대상과 현실 인식은 그만의 독특한 현대적 진경산수 사진을 산출해내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의 첫 번째 사진 작품이 LNG 기지 설립 때문에 환경 훼손 문제가 이슈화되었던 <월천리 솔섬> 작업이었다는 것은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회화는 채색이 자유롭지만, 사진은 피사체가 원래 지닌 색채들로 인해 채색이 제한됩니다. 그러나 임채욱 작가는 다양한 색채의 변주로 표현하는 회화적 사진 풍경을 시도하며 새로운 사진을 시도했습니다. 산을 주요 소재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색채를 제거하여 능선 위주의 선적인 형태를 표현했고, 한지를 인화지 대신 사용하게 되면서 <Snow Mountains> 시리즈를 통해 전통 수묵화와도 같이 자연스러운 흑백의 화면을 이뤄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부조 사진” 작업을 통해, 한지의 구김이 만들어내는 효과와 더불어 회화와 사진, 평면과 입체, 전통과 현대, 기획과 우연, 실제와 허상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과 기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임채욱의 작품들은 서로 상반된 것들이 적절한 균형과 함께 자아내는 긴장의 묘미 속에서 현재의 산을 관객들과 만나게 하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되게 합니다.
작가와의 대담

Q. 임채욱 작가의 사진 작품은 처음 마주 대할 때 마치 한 폭의 전통 수묵 산수화처럼 보입니다. 붓으로 그리지 않고 카메라로 찍은 현대적 진경산수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특별한 작업 방식이 있나요?
A. 저는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수묵화를 그려봤기 때문에, 사진으로도 수묵화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작업에서 기존의 인화지로는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수묵화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지 제작업체와 공동으로 작품에 가장 적합한 특수 한지를 개발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한지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제 작업에서는 산의 형상이 드러내는 윤곽을 마치 수묵화의 필선과 같이 포착하고 여백의 미 또한 중요하게 다루려고 합니다. 이때 한지에 사진 이미지를 출력하면 수묵이 스며든 것과 같은 표현이 가능하며, 또한 한지가 가진 자연스러운 결들이 선의 부드러운 회화적 표현 역시 가능하게 합니다.
완성된 사진을 구기는 행위는 어쩌면 사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진이 지녀온 예술적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합니다. -임채욱-

Q. 주로 어떤 장소를 택하시나요? 특별히 선호하거나 고려하는 촬영 장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2011년부터는 한국의 백두대간의 산을 위주로 작업했으며 다양한 산을 찾지만, 주로 인왕산에서 작업을 해왔습니다. 인왕산은 “진경산수화”를 통해 정선이 한국의 전통 산수화를 새롭게 재창조한 배경이자 근원이 되는 산이기 때문에, 저 역시 인왕산의 모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의 현장이 됩니다. 최근에는 한국의 대표적 명산인 설악산의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고 재해석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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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장소가 선정된 뒤에는 출사 당시의 날씨 변화 등 촬영에 적합하지 않은 변수가 많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외적 조건들은 어떻게 고려하고 조정하시나요?
A. 산 또는 자연은 인간이 가장 컨트롤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즉 산이 허락해야만 촬영과 작업이 가능해지며, 날씨가 가장 중요합니다. 제게는 맑은 날씨보다는, 운해의 변화가 심해서 생동감 넘치는, 눈비가 온 직후의 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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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임채욱 작가의 작품은 현대적 도구를 이용해서 전통적 주제를 다룰 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도 전통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작업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정의를 내리신다면 무엇인가요?
A. 겨울의 한국 설산(雪山)들은 선(線) 위주로 운용되는 전통 수묵산수의 조건을 매우 잘 드러냅니다. 눈은 여백이 되고, 나뭇가지나 산의 형상은 필묵법으로 운용된 선적인 형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제 작업은 사진으로 담아낸 현대적 진경산수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작년부터는 사진의 평면성을 벗어나 입체로 된 작품들도 선보이고 계신데요, 애써 촬영해서 인화한 사진을 구긴다는 것은 기존의 방식이나 개념에서 보자면 평범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으시는지요?
A. 2013년 어느 날, 한지에 ‘산’ 사진을 프린트하던 중 반복되는 에러로 인하여 화가 난 나머지 사진을 구겨 던져버렸습니다. 순간 구석에 버려진 사진이 마치 산의 바윗덩어리처럼 느껴졌고,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사진의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회화적 표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진을 구겨서 입체작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연한 계기로 발견하게 된 나의 부조 사진 작업은, 즉흥적으로 사진을 주무르고 구기는 과정을 통해 나의 감정과 기운을 불어넣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됩니다. 완성된 사진을 구기는 행위는 어쩌면 사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진이 지녀온 예술적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발상의 전환을 가능케 합니다. 구김이 만들어 내는 묘한 명암의 차이와 입체감, 그리고 그로 인한 실재하는 공간과 형상이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줍니다. 결국, 최근 부조 작품들을 통해 저는 사진과 회화, 평면과 입체, 허상과 실재의 틈 사이에 존재하는 ‘구김의 미학’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Q. 임채욱 작가의 예술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것은?
A. “구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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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rak 3D 1407. 2014.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150 x 98 x 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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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rak 3D 1403. 2014.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143 x 77 x 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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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khan 3D 1401. 2014.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133 x 77 x 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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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rak 3D 1421. 2014.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150 x 98 x 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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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rak 3D 1428. 2014.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160 x 107cm
Profile

임채욱 작가는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이후 줄곧 우리 전통 산수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진경산수의 미학적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현대적인 사진 매체와 한지를 함께 사용하여 평면과 입체에서 나타나는 사실성과 시대성을 동시에 구현하며 새로운 산수의 개념을 제시해왔습니다. 그는 이러한 성과들을 인정받아, 5개 분야에서 아시아 작가들을 선정해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영국의 프루덴셜 아이 어워드(The Prudential Eye Awards)를 최근에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부터 <Mind Spectrum>(청화랑, 서울, 한국, 2009 / Shin Hwa Gallery, 홍콩, 중국, 2010 / 표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2012) 전들과 <Snow Mountains>(Shin Hwa Gallery, 홍콩, 중국, 2013), <Inside Mountains>(아라아트센터, 서울, 한국, 2014) 등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Korea Art Today 'Breathe'>(Hong Kong Arts Centre, 홍콩, 중국, 2011), <Prudential Eye Awards: Supporting emerging Asian art>(Suntec City, 싱가폴, 2014>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해왔습니다. 저서로는 <월천리 솔섬: 솔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아트블루, 2010)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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