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Ideas Episode #47: 빌헬름 사스날
사건과 기억을 재구성하는 예술가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글, 그림, 영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합니다. 폴란드 출신의 작가 빌헬름 사스날(Wilhelm Sasnal)은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와 기억을 가지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합니다. 현재와 과거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사스날은 때론 방관자처럼 멀리서 지켜보기도 하고, 좀 더 개인적으로 얽히기도 하면서 사건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는 주관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를 강조하며 이미지 자체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도, 그것을 새롭게 구현해내는 회화(painting)를 통해 정확한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고 믿습니다. 회화와 필름으로 풀어내는 현재와 과거의 기록을 블룸버그와 현대자동차가 마련한 Brilliant Ideas 마흔일곱 번째 이야기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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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회화는 역사적 사실과 사건들을 기록하는 매체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부터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역할을 사진에 내어줍니다. 대신 회화는 이미지를 단순히 화면으로 옮겨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빌헬름 사스날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어떤 그림이 여전히 유효하고 가치 있는지 고민해왔습니다.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동안 그것이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작품을 통해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는지에 관해 고뇌합니다. 그래서 석고상을 보며 데생을 하고 정물화를 그리는 등 ‘전통적’이라 여겨지는 방식의 회화를 지양하고 대중문화에 기반을 둔 작업을 선보입니다. 사스날은 일상적인 소재들을 가져와 캔버스와 필름에 옮겨 담으며 이미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때로는 그림 자체로 물음표를 던지기도 하고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관람자로 하여금 한 폭의 그림에서 다양한 서사를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편, 빌헬름 사스날이 보는 이미지들은 굉장히 유동적입니다. 그는 작품 활동에 일정한 규칙이 생기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합니다. 규칙이 없어야 추상적인 것을 실재처럼 보이게 할 수 있고 실재하는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스날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지와 현상의 숨겨진 ‘진실’과 같이 거창한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보는 이에 따라 알아차릴 수 있는 내용이 달라지고, 애초에 작가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과거로 전하는 현재의 이야기

빌헬름 사스날의 작품의 주제는 대개 역사적 사실이나 작가 주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나 이미지 등에서 차용됩니다.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필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과거의 사건과 미술사적, 역사적 사실 등을 개인적인 기억과 엮어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냅니다.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Bathers at Asnières)>(2010)는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의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Bathers at Asnières)>(1884)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입니다. 사스날은 쇠라의 그림에서 아름다운 날에 비치는 우울함을 감지했습니다. 거기에 고향의 강과 할머니가 들려준 세계 2차 대전 직전의 여름, 사람들이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떠올려 화면에 옮겼습니다. 이렇게 쇠라의 그림을 자신 작품의 이미지로 사용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빌헬름 사스날은 그림에 최소한의 색을 사용합니다. 그는 어떤 것을 강조하고 도드라지게 만들 때, 다시 말해 꼭 필요할 경우에 거기에 맞는 색을 적절히 사용할 뿐이지 그림을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색채를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회색은 단순한 흑백 화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Atlas>(2014)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색을 이용해 감성적인 부분을 배제한 ‘사실’만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미적 요소보다 사실 전달의 매체로 회색을 사용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그가 펼쳐놓은 초록색과 거친 붓질의 풍경은 있는 그대로 로맨틱하면서도, 화학 물질로 오염된 것 같은 풍경의 이질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회화는 세상과 그림 자체를 동시에 반영하는 화면이기 때문에 자신이 사는 세상이 곧 그림이고 작품이라고 얘기하는 사스날은 굉장한 책임감을 느끼며 작품 활동에 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인내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행위임을 강조합니다.

한 작품을 만들 때 걸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창작의 시간 동안 수많은 스토리와 생각들이 엮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사스날의 그림 한 점을 감상하는 것은 100페이지 가량의 만화책을 보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중에도 이미지는 계속 변주하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끊임없이 지속하는 정신적 프로세스임을 강조하는 빌헬름 사스날. 그가 재구성하는 과거, 그리고 현재 그가 남기고 있는 기록들이 훗날에는 과연 어떻게 기억될까요.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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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helm Sasnal <Untitled (Last Temptation)> 2014
diptych, oil on canvas. each: 40 x 50 x 2.5 cm / 15 ¾ x 19 ⅝ x 1 in. Installation view, Wilhelm Sasnal, Sadie Coles HQ, London, 14 January - 21 February 2015.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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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z Do Iguaçu Hotel> 2014
oil on canvas. 160 x 200 x 2.5 cm / 63 x 78 ¾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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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after Stubbs)> 2014
oil on canvas. 40 x 50 x 2.5 cm / 15 ¾ x 19 ⅝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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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Painting (after Cezanne)> 2014
oil on canvas. 35.5 x 49 x 4 cm / 14 x 19 ¼ x 1 ½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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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astika> 2014
oil on canvas. 50 x 40.5 x 2.5 cm / 19 ⅝ x 16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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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er Columbus> 2014
oil on canvas. 160 x 120 x 2.5 cm / 63 x 47 ¼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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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 2014
oil on canvas. 40 x 50 x 2.5 cm / 15 ¾ x 19 ⅝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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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zynek Bambo> 2014
oil on canvas. 220 x 160 x 2.5 cm / 86 ½ x 63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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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section, room> 2014
oil on canvas. 220 x 180 x 2.5 cm / 86 ½ x 70 ⅞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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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 section, plant> 2014
oil on canvas. 140 x 160 x 2.5 cm / 55 x 63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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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ek> 2009
oil on canvas. 220 x 180 x 2.5 cm / 86 ½ x 70 ¼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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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ss> 2013
oil on canvas. 180 x 220 x 2.5 cm / 70 ¾ x 86 ½ x 1 in.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Profile

빌헬름 사스날(Wilhelm Sasnal)은 일상생활과 대중매체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작업합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을 담아내는 이미지들은 표현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까닭에 관람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러나 사스날의 경계 없는 회화 기법과 다채로운 촬영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유화의 전통방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역사적 감각과 사적인 기억을 교차, 혼합시킴으로써 그는 작품으로 다양한 효과를 자아냅니다.
1972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빌헬름 사스날은 크라코우 폴리테크닉(Cracow Polytechnic, Poland)에서 건축을, 얀 마테이코 아카데미(Jan Matejko Academy of Fine Arts, Poland)에서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라드니아 아트 그룹(Ładnie art group)의 공동설립자이자 멤버로 활동하며 학창시절부터 여러 전시를 경험한 그는, 하우저 & 워스(Hauser & Wirth, London), 요넨 갤러리(Johnen Galerie, Berlin), 사디 콜(Sadie Coles, London), 차오 스페이스 2555(Qiao Space 2555, Shanghai), 화이트 채플 갤러리(Whitechapel Art Gallery, London), 랫 홀 갤러리(Rat Hole Gallery, Tokyo) 등 세계 각지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Bloomberg Brilliant Ideas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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