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dai Meets: 터바인 페스티벌
Hyundai Meets의 두 번째 프로젝트, 터바인 페스티벌
‘원 데이, 원 시티(One Day, One City)’를 엿보다

예술로 하나 되는 소통의 메카
2015년 7월 25일, 영국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내부 터바인 홀(Turbine Hall)에서는 ‘원 데이, 원 시티(One Day, One City)’라는 주제로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이는 터바인 홀에서 10년 동안 지속하는 ‘현대 커미션(Hyundai Commission)’에 앞서,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예술 축제를 통해 관객과 더욱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고자 기획된 행사입니다. 2014년 테이트 모던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 9점을 소장하도록 후원한 것에 이은 현대자동차의 두 번째 행보를 알리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페스티벌이 열린 터바인 홀은 기존 화력발전소에서도 엔진이 있던 중심부로, 1층에서 5층까지 전체를 하나로 관통한 초대형 전시공간입니다. 대규모 설치작품을 선보이기에 이상적인 공간이자 테이트 모던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발돋움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원데이, 원시티’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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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를 지날 즈음, 다채로운 행사로 시작을 알린 터바인 홀 내부는 이미 분주해지고 있었습니다. 아티스트, 댄서, DJ, 요리사, 음악가 등이 주축이 되어 라이브 퍼포먼스, 워크숍, 설치미술 및 시집 읽기 등을 진행한 여러 프로그램은 주말 오후를 남녀노소 구분 없이 활기로 채우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전시장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들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단순한 경험 이상으로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을 모두 자극하며 다양한 교감을 통해 살아있는 삶의 현장으로 미술관을 탈바꿈하게 했습니다.

처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오렌지 향은 후각을 강하게 자극했습니다. 이는 <그라운드 넛 테이블(The Groundnut Table)>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으로, 약 20m 길이 테이블에 방문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렌지 껍질을 까고, 껍질을 벗긴 오렌지 뚜껑을 잘라 빨대를 꽂아 주스를 마시는, 서부 아프리카 전통 주스 제조 방법을 소개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아티스트 그룹은 평소 “평등”과 “균일함” 등과 연관된 사회적 고민들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예술가들인데, 같은 힘과 동일한 굵기로 깎아야지만 오렌지 과육을 해치지 않고 빨대를 꽂아 주스를 마실 수 있다는 아프리카 전통의 “오렌지 주스 마시는 방법”을 관람객과 함께 함으로써 손쉬운 예술적 행위를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환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참여자 수가 늘어날수록 오렌지 향은 더욱 진해져 참여의 욕구를 더욱 자극했으며, 시각적인 경험에 익숙한 전시장 내부에 오렌지 향은 퍼져 후각을 자극하는 색다른 경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라운드 넛 테이블>에 긴 테이블이 열린 공간 속 하나임을 알려주듯, 기존의 벽으로 둘러싸인 화이트 큐브(White Cube)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인 터바인 홀 속 행사는 하나의 공동체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프로그램들이 가진 공통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직접적인 경험들을 통해 경계를 없앤다는 것인데요, 페스티벌은 터바인 홀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이러한 의미를 더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페스티벌의 정점을 찍은 것은 다양한 소리를 경험할 수 있게 한 지역단체 프로그램 <하쿠스틱(Hackoustic)>입니다. 소리 연구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옷걸이나 다양한 철물, 실, 이끼로만 작동하는 악기, 버려진 물건들이 내는 소리 등 일상생활에서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소리를 다시금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중심부에는 한국 전통 악기인 징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철물이 있었는데, 개개인이 나무나 고무망치로 치면 강도 혹은 어디를 치느냐에 따라 다른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소외되고 기억에서 사라진 물건들과 개개인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다채로운 결과물은 또 다른 하나의 창조물과 같았습니다.

다양한 행사들로 분주한 사이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무언가를 만들고 유심히 연구하기에 한창인 모습 또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유리 스즈키(Yuri Suzuki)의 <상상의 레코드 가게(Imaginary Record Shop)>와 주노 프로젝트(Juneau Projects)의 <아이엠 더 워리어(I am the Warrior)> 프로그램 참여자였습니다. <상상의 레코드 가게>는 참가자들이 자신만의 레코드 커버 재킷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각기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특성을 담아 만든 다양한 레코드 커버가 한곳의 벽면을 가득 채워 하나의 가상 레코드 상점을 이루었습니다. <아이엠 더 워리어> 또한 참여자들이 그리는 행사장면을 한데 모아 벽면에 붙여 소개하며 같은 시각 같은 행사장 안에서 개개인이 주관적인 시각으로 담아낸 현실의 모습들이 다르다는 점에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기억 속 파편을 표현한 듯한 이미지는 여러 스냅샷(Snapshot)이 모여 하나의 무빙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처럼 최근 전시의 양상은 관람자들에게 예술 작품을 수동적으로 제시하는 차원을 벗어나 스스로의 경험으로 예술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관람자들과의 ‘소통’이 미술관의 중요한 역할로 대두하고 있는 것을 증명하며, 이러한 변화의 추이는 관람객의 참여적 경험이 작품을 완성하는 주요한 부분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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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행사는 다양한 소통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 중 놀이의 장으로서 페스티벌에 흥을 더해주는 부스도 있었습니다. 레이첼 영(Rachel Young)의 <크라운 오브 컨피던스(Crowns of Confidence)>를 통해서는 마치 미용실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참여자 각각이 원하는 스타일들을 연출하며 개인의 정체성(Identity)을 부각시키고, 하나의 놀이로 개인의 존재감 혹은 자아를 재형성하는 자리로 마련됐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행사에 참여하며 공간을 가득 메웠고, 이에 더해 바로 맞은편에서 이루어진 에반 아이페코야(Evan Ifekoya)의 <프리 투 댄스(Free2Dance)>도 한껏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프리 투 댄스>는 참여자들에게 헤드셋을 나누어 주고, 춤을 출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 프로그램입니다. 춤을 추는 모습은 녹화되고 행사 막바지에 공개되는데, 행사장 한가운데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사람들을 통해 놀이에 대한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놀이(Play)가 긴장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관념적 한계를 없애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말합니다. 미술관은 이러한 놀이를 끌어들여 각각의 개인들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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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장소를 벗어나 터바인 홀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다른 행사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기존에는 없던 카페였습니다. <헌트 앤 달튼 카페 (Hun&Darton Cafe)> 라는 퍼포먼스로, 자세히 보니 메뉴판은 웃음을 자아내는 낙서들로 가득했고, 거의 무료에 가까운 음식들과 머리에 파인애플을 쓴 작가들이 주문을 받으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카페의 전경은 런던 전역에 다양하게 운영되는 채러티 숍 (Charity Shop: 자원봉사와 기부로 운영되는 비영리 상점)과 매우 닮아 있었습니다. 색다름을 경험할 수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할만한 공간을 마련했기에, 페스티벌 프로그램 중에서도 인기가 많아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다음 테이블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카페 퍼포먼스는 ‘일상’이라는 소재로 참여자와 아티스트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도를 다소 유머러스하게 승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또한, 카페와 전시장이라는 장소가 기존에 내재한 의미를 넘어서 예술과 일상의 거리를 좁히며, 과연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난해한 질문까지도 던지게 했습니다.

이처럼 ‘터바인 페스티벌’에서 진행된 각종 프로그램은 예술이 오랫동안 지녀온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라는 개념에 대한 반대의 제스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작품이 꼭 작가의 손을 통해 만들어질 필요는 없으며 참여와 경험으로서 관람객은 참여자(Participant)가 되어 작품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입니다. 기존의 시각적인 경험이 상상과 상징적 의미를 부합해 사물에 감정 이입을 유도하여 해석 및 접근을 시도했다면, 직접적인 경험은 말 그대로 사물과 경험하는 이, 나와 타인, 문화와 문화의 경계들을 허무는 것으로, 이는 곧 참여자가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터바인 홀에서 열린 축제는 하루 동안 경험과 놀이의 장으로 남녀노소, 국적 및 문화의 경계 없이 하나가 되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페스티벌은 소통과 협력 그리고 창의적 사고를 강조하는 현대자동차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있었던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부와 권력의 상징에서 놀이와 경험의 장이 되기까지

많은 대형 미술관들은 전형적인 연대기적 전시를 펼칩니다. 하지만 테이트 모던은 개관부터 달랐습니다. 정물, 풍경, 인물, 역사라는 네 개의 주제로 작품들을 전시해 소장품의 한계를 극복한 개관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또 2006년에는 주제 중심의 맥락을 유지하면서도 미술사 전체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기획으로 소장품 전시를 탈바꿈하였습니다. ‘물질적 제스처(Material Gestures), 시와 꿈(Poetry and Dream), 끊임없는 변화(State of Flux), 에너지와 진화(Energy and Progress)’ 라는 네 개의 주제를 제시한 새로운 전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소장품이 지닌 미적 가치와 미술사적 의의를 극대화 시켰습니다. 테이트 모던의 획기적 도전과 파격적 시도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리고 최근 컨템포러리 미술관들의 경향이자 세계 미술계가 추구하는 ‘미술과 대중들과의 만남’ 역시 테이트 모던이 리드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은 보다 이색적인 방법들을 물색하며 ‘경험’을 통한 미술의 유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터바인 페스티벌’은 결국 미술관 전시가 흘러온 역사 속에서 또 다른 변화의 추이에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경험’이 아닌 ‘참여’가 지닌 의미를 더하고, 미술관에 대한 고정관념 등 경계를 허물었으니 말입니다.
현대자동차와 테이트 모던의 협업이 일궈낸 시너지로 터바인 홀은 어느 때보다 활기찼습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현대 예술의 흐름 속 또 다른 ‘테이트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자리였습니다. 미술관 속에서 현대자동차와 테이트 모던이 이루어낼 새로운 예술적, 문화적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 with ARTINPOST
Turbine Festival: one city, one day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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