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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lliant Ideas Episode #42: 솝힙 피치

기억을 엮고 자유를 창조하는 작가

1975년, 캄보디아에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명목 하에 크메르 루즈(Khmer Rouge)가 등장했습니다. 이들이 전개한 급진적 개혁은 비록 4년 만에 중단되었지만,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그 과정은 캄보디아에 큰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솝힙 피치(Sopheap Pich) 또한 가족과 함께 태국 난민촌으로, 뒤이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 피난민 중 하나입니다.

오로지 두 발에 의지한 기나긴 피난길에 오르는 동안 지켜본 황폐한 경관, 셀 수 없이 쌓인 시체 등 전쟁에 대한 끔찍한 기억은 어린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는 곧 대나무와 등나무로 그려지는 다차원적 예술로 발현됩니다. 자신의 조국 캄보디아에 관해 이야기하는 솝힙 피치를 블룸버그와 현대자동차가 함께하는 Brilliant Ideas 마흔 두 번째 이야기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잔혹한 기억에 뿌리를 두다

크메르 루즈는 솝힙 피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맥락입니다. 작가 또한 크메르 루즈와의 연관성에 대해 “어떤 면에선 그렇다(Yes)”라 답했을 정도로, 본인 스스로도 큰 줄기를 크메르 루즈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피치는 이 시기를 끔찍하다 정의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적 피난길에 올랐던 터라, 사건에 대한 모든 기억은 가족과 연관돼 있기에 되려 소중하다고까지 말합니다. 피난길에 아버지로부터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생존 방법을 배웠으며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애정을 확인했기에 이는 곧 모든 이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만개한 나팔꽃의 형상을 띄고 있는 작품 <Morning Glory>(2011)를 들 수 있습니다. 나팔꽃은 캄보디아의 주식 중 하나로 크메르 루즈가 가져온 빈곤의 시기, 캄보디아인들의 생계유지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징적인 꽃을 탄력적인 선으로 그려내 생존, 사랑,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시대의 필요성을 끌어냈습니다.
이렇듯 피치는 자신이 지닌 ‘기억’과 관련된 조각 작품을 만듭니다. 피치는 자신의 기억과 관련되지 않은 것을 만든다면 작품은 결코 내 기억에 존재하는 의문점을 해결할 수 없으며, 만일 작품이 나에게 기억에 관한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면 성공적이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즉, 작품을 통해 경험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나긴 텍스트로 일일이 설명하는 것 보다, 예술 작품 하나가 진짜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기억, 환경을 잇다

시카고에서 미술을 학습한 솝힙 피치는 2004년 캄보디아로 돌아온 뒤 돌연 회화 중단 선언을 합니다. 회화가 시카고의 환경과는 잘 맞았지만, 캄보디아의 환경을 반영하지 못했고, 작가를 위해 예술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작가는 작업의 주제와 재료를 선택할 때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는데, 그때 눈에 띈 것이 바로 캄보디아 특산물인 ‘등나무’와 ‘대나무’입니다. 작가는 이를 캄보디아 전통 직조 기법을 이용해 작품화하기 시작했고, 등나무와 대나무는 곧 단순 재료 그 이상의 것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두 나무를 접한 후 기존 미술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으며, 최종 결과물이 반드시 어떠한 개념을 지녀야 하고,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미술사적 관점에서 벗어난 그는 나아가 최종 작품에서 추가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유로움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실험하기 이릅니다. 여기에 더해, 캄보디아 사회 상황이 충분히 복잡하다 생각하는 작가는 정치적이거나 결정적 발언을 하는 등 예술작품에 더 이상 자기 주관성을 더할 필요가 없다 믿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술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피치는 작품이 지나치게 시각적으로 많은 단서를 제공하는 것을 지양하기도 합니다.
피치의 작품은 자유로운 생각의 활로가 열어놓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환경 속에 무언가 존재함을 깨닫고 그것과 연결되길 희망하기에 작가는 대나무와 등나무를 엮어냅니다. 피치에게 무언가를 얽히게 하고 만든다는 것은 삶에 있어 ‘치료’적인 역할이며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등나무와 대나무가 주는 경험에 대해 이러한 단어를 즐겨 씁니다. ‘기쁨(Joy).’ ■ with ARTINPOST

  • <Luminous Falls No. 2> 2013

    Bamboo, rattan, wire, burlap, plastics, beeswax, damar resin, charcoal, bronze powder, copper powder 79×79×3in.(200×200×8cm)

    <Luminous Falls No. 2> 2013 Bamboo, rattan, wire, burlap, plastics, beeswax, damar resin, charcoal, bronze powder, copper powder 79×79×3in.(200×200×8cm)
  • <Compound> 2011

    Bamboo, rattan, plywood, and metal wire installation
    177×134×126in.(450×340×320cm)

    <Compound> 2011 Bamboo, rattan, plywood, and metal wire installation<br>177×134×126in.(450×340×320cm)
  • <Morning Glory> 2011

    Rattan, bamboo, wire, plywood, steel bolts 210× 103×74in.(533.4×261.6×188cm)

    <Morning Glory> 2011 Rattan, bamboo, wire, plywood, steel bolts 210× 103×74in.(533.4×261.6×188cm)
  • <Silence, Version 4> 2009

    Rattan and wire 24×22×8in.(61×56×20cm)

    <Silence, Version 4> 2009 Rattan and wire 24×22×8in.(61×56×20cm)
  • <Buddha 2> 2009

    Rattan, wire, dye 100×29×9in.(254×73.7×22.9cm)

    <Buddha 2> 2009 Rattan, wire, dye 100×29×9in.(254×73.7×22.9cm)
  • <Buddha> 2010

    Woodblock print; water-based ink on paper 79×42in.(200.7×106.7cm) Edition of 25, 2 Aps

    <Buddha> 2010 Woodblock print; water-based ink on paper 79×42in.(200.7×106.7cm) Edition of 25, 2 Aps
  • <Jayavarman VII> 2011

    Rattan, plywood, burlap, glass, beeswax, charcoal, spray paint 66×36 ½×22 ½ in.(168×92×57cm)

    <Jayavarman VII> 2011 Rattan, plywood, burlap, glass, beeswax, charcoal, spray paint 66×36 ½×22 ½ in.(168×92×57cm)
  • <Polaroid> 2015

    Bamboo, rattan, metal wire 99.25×78.75×4in.(252×200×10cm)

    <Polaroid> 2015 Bamboo, rattan, metal wire 99.25×78.75×4in.(252×200×10cm)
  • <Tides> 2014

    Bamboo, rattan, wire, burlap, plastics, resin, beeswax, damar resin 99×79×4in.(251×200×11cm)

    <Tides> 2014 Bamboo, rattan, wire, burlap, plastics, resin, beeswax, damar resin 99×79×4in.(251×200×11cm)
  • <Rang Phnom Flower No. 5> 2016

    Rattan, metal wire 128×63.75×26in.(325×162×66cm)

    <Rang Phnom Flower No. 5> 2016 Rattan, metal wire 128×63.75×26in.(325×162×66cm)

Profile

솝힙 피치

크메르 루즈(Khmer Rouge)로 인해 1970년대 캄보디아는 그 어느 때보다 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많은 캄보디아인이 희생당한 이 시기에 솝힙 피치(Sopheap Pich)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미술을 배운 그는, 작업에 몰두하면 할수록 캄보디아에서 보낸 유년시절 기억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결국 2004년, 그는 캄보디아와의 연결점을 찾고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고국에 온 뒤 등나무, 대나무와 같은 캄보디아 고유 생산물을 주재료 삼아 전통 직조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러한 대나무 작품을 통해 피치는 명실상부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국제적 역량을 지닌 작가로 성장했습니다.
1971년 캄보디아에서 태어난 솝힙 피치는 현재 프놈펜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헨리 아트 갤러리(Henry Art Gallery, Seattle),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에서 개인전을 ‘제6회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6th Asia Pacific Triennial)’, ‘2011 싱가포르 비엔날레(Singapore Biennial 2011)’, ‘도쿠멘타 13(Documenta 13, 2012)’ 그리고 구겐하임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등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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