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Ideas Episode #17: 사이먼 데니
기업의 숨겨진 철학을 재료로 삼는 예술가

혁신가의 딜레마

2015년,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이하 MoMA) PS1에서 사이먼 데니(Simon Denny)의 전시 <혁신가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가 열렸습니다. 전시 제목은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해 선두로 달리는 기업이 더는 신기술을 선보이지 못하는 시점에, 후발주자 기업이 만든 새로운 기술에 의해 전복 당한다는 어느 경제학자의 이론에서 유래했습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은, 앞선 이론이 현실화되는 광경을 확인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감 속에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데니는 체제를 전복시키는 혁신적인 변화, 완전히 다른 기기의 출현으로 야기되는 변동이 세계 곳곳에서 무자비하고 빠른 속도로 일어나야 한다는 경제 이론을 관조적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아마도, 그의 작업이 미술계에서 주목 받는 이유도 이러한 기업의 운명이 극도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나야 하는 우리의 운명과 비슷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블룸버그와 현대자동차가 마련한 열일곱 번째 이야기에서 탐험가 사이먼 데니의 작품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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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기 >신랄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통한 기업현실 재현

앞서 소개한 그의 전시 <혁신가의 딜레마>는 지난해 MoMA PS1 전시 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끌었던 전시로 손꼽힙니다. 약 50여 점의 평면작업, 15점의 조각, 설치 작품이 곳곳에 자리해 마치 하나의 박물관을 연상시켰던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 <뉴 매니지먼트(New Management)>(2014)는 마치 제단처럼 보이는 한 덩어리의 무대로 제작된 작품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호텔 VIP룸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일종의 세트장입니다.
이 방은 자신 회사에 거대한 변혁을 예고한 어느 기업 회장이 "아내와 아이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라는 발언을 한 장소로, 데니는 그 장소가 한 기업의 새로운 성장과 정신적 가치를 선포했던 곳이라는 점에 흥미를 느껴 의미 있는 공간으로 선정했습니다. 그는 어렵게 구한 VIP룸 사진을 바탕으로 장식, 꽃, 그림 등 방 안의 인테리어를 최대한 재현했습니다. 전시장 한구석에서 느리게 돌아가고 있는 에어컨 실외기 위에는 "똑똑한 변환기, 그룹이 변화할 때 사회도 변할 수 있다"란 기업의 표어가 적혀있습니다.

또 한 편에는 포장을 뜯지 않은 모바일 기기가 회장이 집필한 경영 철학서를 짓누르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고개를 들면 기업 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나부터 변하자』는 책이 깔끔한 액자에 둘러져 있는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크게 쓰인 현판을 설치해 기업의 생에서 역사적 장면을 포착한 기록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생생히 들게 해 한 기업의 문화, 철학뿐만 아니라 기업 기반이 자리하는 냉엄하고 끔찍한 경쟁세계를 신랄하게 보여줍니다.
매우 간단한 구조로 창조된 이 기이한 공간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 명료히 밝힙니다. ‘스마트’를 표어로 내걸며 끊임없이 우위를 선점하고, 한 치의 오차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기업 문화를 데니는 상당히 객관적 시선으로 재현하는데, 어떠한 가치평가를 배제한 채 기업의 삶을 내비쳐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이러하다’라고 말합니다.
하이테크놀로지 탐험가

데니는 인터넷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의 독특한 문화, 최첨단을 달리는 기술이 점점 노후하며 겪는 현상, 기업문화, 그리고 동시대의 국가 정체성의 구조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합니다. 특히 그가 주로 관심을 두고 관찰하는 분야는 최첨단의 IT 기술회사로 가득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빠르게 탄생하는 동시에 다른 기업에 밀려 곧바로 시련을 겪기도 하고, 부활하기도 하는 스타트업 회사들의 매력은 단연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새로운 경영 마인드, 신속한 조직 구성력입니다. 이런 신생기업의 특징을 위트 있는 영상으로 담아내거나 설치작업으로 풀어내는 작가는 ‘2015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2015)’ 뉴질랜드 파빌리온에서 ‘Secret Power’(2015)를 선보였습니다.

‘Secret Power’는 NSA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2013년 유출한 자료의 일부분을 차용한 프로젝트로, 마르시아나 국립도서관(Biblioteca Nazionale Marciana)과 마르코 폴로 공항(Venice Marco Polo Airport) 터미널에서 진행됐습니다. 도서관에는 유리케이스 안 이중 진열된 서버 래크와 워크스테이션을 서버룸과 함께 설치했으며, 복잡한 컴퓨터 장치를 더해 마치 NSA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습니다. 한편, 감시받는 듯한 제한적이고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지닌 회사로 꾸려진 공항 터미널은 하이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안전 시스템 장비로 가득 메워졌습니다.
복잡한 퍼즐과도 같은 이 프로젝트는 르네상스 시대 베니스의 강한 국력을 상징한 마르시아나 국립도서관, 9/11테러 직후 새로운 안전지대로 떠오른 공항, 그리고 한때 국가를 대표하는 모델이었지만 현재 국제 예술계에서 쇠퇴하는 면모를 보이는 비엔날레 등 작품이 설치되는 모든 장소의 상호작용과 개별성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그는 관람객이 우선 작품 속 하이테크놀로지를 시각적으로 경험토록 유도한 뒤, 고도의 기술을 이용한 작품 안에서 지리, 지식 그리고 힘 사이에 형성되는 일련의 관계에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이렇듯 최근 데니의 연구는 기술의 혁명과 쇠퇴, 신자유주의문화, 인터넷 등을 주목합니다. 앞선 모든 요소가 특정 장소에 둥지를 틀고 확장되어 나가는 알레고리에서 다른 것들과 어우러지며 재구성되는 과정을 통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해석을 즐기는 그는 진정한 첨단기술 탐험가입니다. ■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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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Denny in collaboration with Alessandro Bava <Contemporary Tower of Babel / PMBMBA> 2015
Site-specific installation, Moderna Museet, Stockholm, 2015 Commissioned by LUMA Foundation
Photo: Asa Lunden -
Simon Denny in collaboration with Alessandro Bava <Contemporary Tower of Babel / PMBMBA> 2015
Site-specific installation, Moderna Museet, Stockholm, 2015 Commissioned by LUMA Foundation
Photo: Asa Lunden -
Installation view of <The Personal Effects of Kim Dotcom> at Adam Art Gallery Wellington, 2014
Courtesy the artist and Adam Art Gallery Wellington
Photo: Shaun Waugh -
Installation view of <The Personal Effects of Kim Dotcom> at Adam Art Gallery Wellington, 2014
Courtesy the artist and Adam Art Gallery Wellington
Photo: Shaun Waugh -
Installation view of <Secret Power> 2015
Photo: Michele Cros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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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Secret Power> 2015
Photo: Michele Cros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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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Secret Power> 2015
Photo: Michele Cros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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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Secret Power> 2015
Photo: Michele Cros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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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The Innovator's Dilemma> at PS1, New York, 2015
Courtesy the artist and PS1, New York
Photo: Pablo Enriquez -
Installation view of <The Innovator's Dilemma> at PS1, New York, 2015
Courtesy the artist and PS1, New York
Photo: Pablo Enriquez -
Installation view of <The Innovator's Dilemma> at PS1, New York, 2015
Courtesy the artist and PS1, New York
Photo: Pablo Enriquez -
Installation view of <The Innovator's Dilemma> at PS1, New York, 2015
Courtesy the artist and PS1, New York
Photo: Pablo Enriquez -
Installation view of <New Mangement> at Portikus, Frankfurt (Main) 2014
Photo: Helena Schlic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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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New Mangement> at Portikus, Frankfurt (Main) 2014
Photo: Helena Schlic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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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of <New Mangement> at Portikus, Frankfurt (Main) 2014
Photo: Helena Schlichting
Profile

1982년 뉴질랜드 출생 조각가이자 설치 미술가인 사이먼 데니(Simon Denny)는 기술이나 미디어 회사들에 의해 생산된 광고, 패키지 등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품을 완성합니다. 뉴미디어 경제의 이상향과 역사적 모더니즘 간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때로 상업 전시에서 빌린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세계 문화를 형성하는 기술의 역할과 정보를 통제하고 공유하는 방식에 집중하는 작가는 조각, 그래픽, 영상을 결합한 설치작업을 통해 이러한 생각들을 표현합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데니는 미국 아스펜 미술관과 독일 뮌헨 쿤스트 페어라인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그는 2008년 시드니비엔날레와 2009년 브뤼셀비엔날레에 초대받았고, 2012년 아트바젤에서 발로와즈상(Baloise Art Prize)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뉴질랜드관 대표작가로 선정돼 더욱 주목 받고 있습니다.
Bloomberg Brilliant Ideas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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