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Ideas Episode #48: 라그나 캬르탄손
슬픔을 노래하는 따뜻한 허무주의자


창작은 주변의 익숙함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지켜낼 때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기반이 됩니다. 라그나 캬르탄손(Ragnar Kjartansson)은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전시하고, 각지로부터 러브콜을 받지만 여전히 자신의 고향,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 활동하기를 고집합니다.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레 아티스트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국인 아이슬란드와 자신의 성장 과정이 작업의 뮤즈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감독이자 배우였고, 어머니 역시 배우인 그에게 무대 뒤는 어릴 적부터 놀이터였습니다. 여전히 숲에 요정(elf)이 산다고 믿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환상과 순수한 마음 역시 영감의 원천이라는 라그나 캬르탄손을 블룸버그와 현대자동차가 함께하는 Brilliant Ideas 마흔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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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 캬르탄손은 영상, 회화, 드로잉 등 여러 예술 장르를 종횡무진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퍼포먼스 아티스트라고 불리며,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합니다. 감독, 배우, 기획자의 역할을 모두 담는 올인원(all in one)으로서 상황을 연출해내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업은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넓은 스펙트럼이지만 그를 특징짓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반복’입니다. 어릴 적 무대 뒤에서 반복되는 연습 과정을 보고 자란 그에게 리허설은 그저 연습과정이 아니라 특별한 대상이 됩니다. 그것에 착안해 퍼포먼스에서도 ‘반복’을 방법론으로 사용하며 탄생, 죽음, 가족과 같은 이야기를 순환의 방식으로 엮어갑니다.

<God>(2007)에서는 1950년대 라운지 가수가 등장해 벨벳 배경을 갖춘 무대, 간소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끊임없이 같은 노래를 반복합니다. <A lot of Sorrow>(2013-2014)에서는 무대 위에 선 미국의 인디 밴드 ‘더 내셔널(The National)’이 한 노래만을 반복해서 6시간 동안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같은 작품을 다른 상황에서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Me and My Mother>(2000, 2005, 2010, 2015)는 그와 그의 어머니, 둘이 나란히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 작품입니다. 화면 속에서 캬르탄손의 어머니이자 아이슬란드의 유명한 배우 구드룬 아스문드도티르(Guðrun Asmundsdottir)는 아들의 얼굴에 가차 없이 침을 뱉습니다. 둘의 모습은 5년마다 촬영되고 이로써 늙어가는 모습도 함께 축적됩니다. 반복에 시간성이 엮이는 것입니다. 2000년에는 학생이었던 그가 2015년의 영상에서는 턱수염을 복스럽게 늘리고 수트를 차려입은 장년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음 5년 뒤에도, 또 다른 5년도 여전히 그 반복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반복이란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일 뿐만이 아니라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슬픔을 노래하다

캬르탄손의 작업에서 반복과 지속이 형식상의 특징이라면, 주제상의 특징은 ‘슬픔’입니다. 캬르탄손의 퍼포먼스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조의 음계를 연주합니다. 특히나 그가 사랑하는 것은 E 단조인데, 이는 멜랑꼴리한 감정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코드입니다. 그에게 E 단조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선율입니다. 음악을 배우면서 E 단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때야 비로소 ‘음악’을 느끼게 되었다는 그는 이를 통해 ‘궁극적인 슬픔’을 표현합니다.

퍼포먼스 <Woman in E>(2016)에는 반짝이는 금색 비늘로 된 가운을 입은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는 하루 종일 기타를 연주하면서 E 단조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올라 서 있는 금색 원형의 무대는 진열대처럼 뱅글뱅글 돌아가고,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그는 날마다 쉬지 않고 걱정과 근심, 생각에 잠긴 상상 병에 걸린 모습으로 노래합니다. <A lot of Sorrow>에서도 밴드 ‘더 내셔널’이 장장 6시간 동안 부른 노래의 제목은 ‘슬픔(sorrow)’입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 PS1에서 했던 퍼포먼스로, 밴드가 관객 앞에서 반복에 반복하는 노래는 ‘슬픔’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직설적으로 슬픔을 이야기하고 반복해서 들려주어 강조합니다.

그는 “슬픔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sorrow conquers everything)”고 비관하며 예술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쉼 없이 예술을 하고,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게다가 그가 부르는 슬픔의 노래는 좌절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 노랫가락은 부드럽고 왜인지 다정합니다. 작가의 아내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작품은 따뜻한 허무주의(warm nihilism)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그의 부드러운 단조 음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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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 Venice, November> 2009
Performance installation. Six month performance during the 2009 Venice Biennale during which 144 paintings were made Commissioned by the Center for Icelandic Art.Photo Rafael Pinho ⓒRagnar Kjartansson; Courtesy of the artist,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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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ot of Sorrow> 2013-2014
Single channel video edition of 10 and 2 artist's proofs duration: 6 hours, 9 minutes, 35 seconds A Lot of Sorrow took place at MoMA PS1, as part of Sunday Sessions. Sunday Sessions Photo Elisabet Davids ⓒRagnar Kjartansson and The National; Courtesy of the artists,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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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and My Mother 2015> 2015
Single channel video with sound edition of 6 and 2 artist's proofs Duration: 20 minutes 25 seconds ⓒRagnar Kjartansson; Courtesy of the artist,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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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and My Mother 2000> 2000
Video artist's proofs Duration: 10 minutes ⓒRagnar Kjartansson; Courtesy of the artist,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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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sitors> 2012
Nine channel video projection edition of 6 and 2 artist's proofs Duration: 64 minutes Photo Elisabet Davids ⓒRagnar Kjartansson; Courtesy of the artist,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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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Light - The Life and Death of an Artist> 2015
Four-channel video looped Duration: 8 hours 27 minutes 22 seconds Commissioned by Thyssen-Bornemisza Art Contemporary, Vienna ⓒRagnar Kjartansson; Courtesy of the artist,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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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y Mountains> 2009
Five channel video projection Duration: 30 minutes 30 seconds ⓒRagnar Kjartansson; Courtesy of the artist,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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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gnar Kjartansson and Kjartan Sveinsson <The Explosive Sonics of Divinity (Der Klang der Offenbarung des Göttlichen)> 2014
Volksbühne Theater, Berlin, Germany. Performed by the German Film Orchestra Babelsberg and the Film Choir Berlin photos by Thomas Aurin ⓒ Ragnar Kjartansson and Kjartan Sveinsson; Courtesy of the artists,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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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Light - The Life and Death of an Artist> 2015
Four-channel video looped Duration: 8 hours 27 minutes 22 seconds Commissioned by Thyssen-Bornemisza Art Contemporary, Vienna ⓒRagnar Kjartansson; Courtesy of the artist, Luhring Augustine, New York, and i8 Gallery, Reykjavik.
Profile

Photo: Elísabet Davids
라그나 캬르탄손(Ragnar Kjartansson)은 극작가이자 감독, 연기자인 아버지 덕에 ‘연극’이란 장르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같은 대사와 장면을 수십 번 반복하는 연극 리허설을 보고 자란 작가는 한가지 특이점을 깨닫습니다. 바로 연기자 본연의 인격과 스타일에 따라, 같은 대사도 달리 전달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언어와 사람의 특성 사이의 연결성에 큰 흥미를 느낀 그는 연극에 매료돼 본격적으로 작업에 임하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퍼포먼스 및 비디오 아티스트로 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76년 태어난 라그나 캬르탄손은 아이슬란드 출신으로 현재 레이캬비크를 중심으로 활동 중입니다. 영국 바비칸센터(Barbican Centre, London), 몬트리올현대미술관(Musée d'art contemporain de Montréal), 팔레드도쿄(Palais de Tokyo, Paris), 뉴뮤지엄(New museum, New York) 등을 비롯 세계 유수 기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마니페스타(Manifesta)’ 참여, 말콤 맥라렌 어워드(Malcolm McLaren Award) 수상 등 다양한 경력을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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