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lliant Ideas Episode #16: 이불
끝없이 진화하는 작은 거인

예술가, 경험을 권하다

사람들은 종종 현대예술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하곤 합니다. 보이는 이미지와 주제가 비교적 일치했던 옛 회화와 달리, 한 층 더 개념적인 주제를 담는 현대미술에 대중들이 장벽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레퍼런스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불은 대중들이 작품을 직접 체험해 몸소 이해하는 방법을 권하며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현대예술을 이해하는데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작품을 이해하려는 방법보다는 작품을 눈앞에서 직접 대면하고 체험하는 것을 통해 예술과 익숙해지는 방법을 작가는 추구합니다. 경험을 중시하는 예술가 이불, 블룸버그와 현대자동차가 마련한 열여섯 번째 이야기에서 그의 철학 아래 작품을 체험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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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기 >자유를 향한 돌파구 ‘예술’

1960년대 한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6.25 전쟁이 수습이 채 되지 않은 전후 상황에서, 5.16 군사정변까지 일어나 그야말로 모든 것이 혼란이었습니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상 정치 문제는 민감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그의 부모님은 도피자 신분으로 어느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교도소에 드나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작가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재는 폐지된 법이지만 당시엔 ‘연좌제’란 법이 있었습니다. 특히 정치범 당사자와 가족은 10명 이상 모이는 집단 활동에 참가할 수 없는 사항으로 인해, 이불은 연좌제란 사슬에 묶여 자유로운 사회 활동을 억압받았습니다. 이런 일화가 유년시절이 행복과 멀었음을 증명하듯 그는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예술’은 작가에게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돌파구가 되었습니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시기는 단 하나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만이 존재했는데, 일방적인 이데올로기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던 작가에게 예술은 유일한 대안으로 여타 다른 활동보다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이불이 진학한 예술대학은 상상한 만큼 이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탐방하는 모습을 꿈꾸던 이불이 맞닿은 학교 수업은 예술에 관한 자유로운 논의의 장이 아닌 체제 순응적인 교육을 답습하는 내용으로 꾸려졌기 때문입니다.

퍼포먼스는 이러한 학교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첫 퍼포먼스는 조각 매체에 저항하기 위한 제스처였으며, 기존 한국 예술 교육에 있던 여러 고정관념과 정의에 대한 저항이자 자신이 지닌 의문점을 표출하는 예술적 갈망이었습니다. 뒤이어 1989년, 그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한국 현대예술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나체로 등장한 이불은 천장에 설치한 밧줄에 매달린 채 위아래로 움직이며 낙태에 관한 독백, 노래 가사를 낭송하는 <낙태>(1989)를 2~3시간 동안 진행했습니다. <낙태>를 시작으로 기존 관념에 대한 저항에서 여성의 존재에 관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담기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몬스터 형태의 옷을 뒤집어쓴 채 게릴라로 진행한 퍼포먼스에서는 여성성에 대한 고민을 확장해 신체, 여성, 아름다움 그리고 젠더에 관한 의문을 지속적으로 화두에 올렸습니다.
유토피아를 찾아서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사회학자 리오타르(Jean Francois Lyotard)의 철학은 거대서사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출발합니다. 거대서사란 모든 역사를 이해하게 돕는 커다란 틀을 의미하는데, 리오타르는 이것이야말로 타자를 배제해온 절대적 진리처럼 취급돼 온갖 작은 서사들의 다양성을 무시한 전체주의적 횡포라며 거침없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불의 첫 모뉴먼트 작품 <Mon Grand Récit>(2005~)는 더 이상 진보와 해방의 ‘거대서사(Le Grand Récit)’가 불가능하다는 리오타르 철학을 반영합니다. 근대 건축가들이 구상한 유토피아적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는 20세기 건축에 등장했던 유토피아에 관한 담론을 다루며 이에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반영해 하나의 풍경으로 재현합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에서 공개한 두 개의 작품 또한 앞선 유토피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전시의 시작인 <태양의 도시 II>(2014)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로에 비해 높이가 낮아 길 찾기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거울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함부로 길을 헤집고 다닐 수 없어 또 다른 개념에 미로에 갇힌 기분이 들게 합니다. 게다가 사방이 온통 거울로 되어있는 터라, 공간은 단 한 순간도 관람객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모든 곳에 움직임을 반사합니다. 이불은 이곳에서 길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과 거울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자의식 두 가지 경험을 한 공간에 어우러지게 해, 마침내 미로에서 나왔을 때 본능과 자의식 사이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이고 이상한 기분은 무엇인가’ 등 무수한 질문에 휩싸이게 합니다.

뒤이어 <새벽의 노래Ⅲ>(2014)가 있는 공간에선 관람객은 자욱한 수증기로 인해 작품을 또렷이 볼 수 없는 체험을 합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을 상징하던 힌덴부르크 비행선의 기체 구조와 유토피아를 추구한 브루노타우트(Bruno Taut)의 <새로운 법령을 위한 기념비(Monument des NeuenGesetzes)>(1919)를 결합한 작품은 유토피아에 대한 긍정적 성향을 보인 타우트와 달리 그 형태가 해체되어 정확한 판별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작품이 수증기를 뿜어내어 불분명함을 더합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실에 없는 이상향에 대한 열망과 열망의 과잉으로 인해 오히려 암울한 사회의 통제와 억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통해 누구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갈망하는 이불은 자신의 흥미를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예술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그는 “작업하지 않는다면 살아내는 것조차 힘들 것”이라 단언합니다. 그의 말이 의미하듯 예술은 이불에게 삶 그 자체이며, 작가의 인생과 철학을 담아내는 매체입니다. ■ with ARTINPOST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이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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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of exhibition at '10th Gwangju Biennale, Korea' 2014
Photo: Sehun Kim Courtesy: Gwangju Bienna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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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vings> 1989
Outdoor performance, Jang Heung, Korea
Courtesy: Studio Lee Bul -
<Cravings> 1989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Seoul
Courtesy: Studio Lee Bul -
<Sorry for suffering? You think I’m a puppy on a picnic?> 1990
12-day performance, Kimpo Airport, Narita Airport, downtown Tokyo, Dokiwaza Theater, Tokyo
Courtesy: Studio Lee Bul -
Partial view of <Majestic Splendor> at <Projects>,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1997
Fish, sequins, potassium permanganate, mylar bags 360×410cm
Photo: Robert Puglisi Courtesy: Studio Lee Bul -
<Majestic Splendor(detail)> 1997
Fish, sequins, potassium permanganate, mylar bag
Photo: Robert Puglisi Courtesy: Studio Lee Bul -
<Cyborg W1-W4> 1998
Collection of Artsonje Center, Seoul
Photo: Yoon Hyung-moon Courtesy: Studio Lee Bul -
Installation view of <Cyborg W4> at '1999 Venice Biennale' 1998
Cast silicone, polyurethane filling, paint pigment 188×60×50cm
Photo: Rhee Jae-yong Courtesy: Studio Lee Bul -
<Amaryllis> 1999
Hand-cut polyurethane panels on aluminum armature, enamel coating 210×120×180cm Arario Collection, Korea
Photo: Rhee Jae- yong Courtesy: Studio Lee Bul -
View of <Mon grand recit: Weep into stones . . .> at Lee Bul exhibition, Musee d’art moderne et contemporain de Saint-Etienne metropole 2015
Photo: Yves Bresson Courtesy: Musee d’art moderne et contemporain de Saint-Etienne metrop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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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s from the Deep> 2014
Cast polyurethane, acrylic paint, mirrors, two-way mirror, glass, LED lighting, wood, enamel paint 370×360×330cm
Photo: Jeon Byung-cheol Courtesy: Studio Lee Bul -
View of <Aubade III> at <MMCA Hyundai Motor Series 2014: Lee Bul>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14-15 2014
Photo: Jeon Byung-cheol Courtes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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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bade III (detail)> 2014
Photo: Jeon Byung-cheol Courtes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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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of <Civitas Solis II> at <MMCA Hyundai Motor Series 2014: Lee Bul>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14-15 2014
Photo: Jeon Byung-cheol Courtes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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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itas Solis II (detail)> 2014
Photo: Jeon Byung-cheol Courtes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Profile

1964년생 이불(Lee Bul)은 세계적인 현대미술가로 자리매김한 한국 작가입니다.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전시에서 스팽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서서히 부패하는 날생선을 선보인 그녀는 이를 계기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사이보그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 한국관을 대표한 이불은 작품 활동 초기부터 퍼포먼스, 설치, 조각 작업 등 행위 예술과 설치 예술을 통해 아름다움, 파괴 등을 주제로 인습타파적 작업을 펼쳤습니다. 2000년 이후부터는 개인의 경험을 인류의 역사와 결합시켜 비판의 시각을 제시해내는 ‘나의 거대서사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뉴욕현대미술관, 뉴뮤지엄, 구겐하임미술관, 퐁피두아트센터, 도쿄모리미술관 등 해외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보여준 그는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를 통해 대형 신작 <태양의 도시 II>와 <새벽의 노래 III>를 선보였으며, 그 중 <새벽의 노래 III>는 현재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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