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SIMG

Brilliant Ideas Episode #1:
그레이슨 페리

스스로 끌리는 작업을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아이콘'

<I am a Man> 2014 Patinated brass 59×30×33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유니크한 모더니즘 어법

<Expulsion from Number 8 Eden Close> 2012 Wool, cotton, acrylic, polyester and silk tapestry<br>200×400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여성 옷을 입는 작가’. 그레이슨 페리에겐 항상 이런 수식이 붙습니다. 영국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아티스트인 그는 2003년 현대미술계 권위 있는 상인 ‘터너상’을 수상할 때도 2013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훈장’을 받을 때도 아름다운 여성 의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아이콘으로 꼽히는 그가 자신의 성장배경과 예술관, 고민 등을 직접 이야기합니다. 블룸버그와 현대자동차가 담아낸 Brilliant Ideas 그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그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다

<Idealised Heterosexual Couple> 2013 Glazed ceramic 53×30×30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그레이슨 페리는 1960년 영국 첼름스퍼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페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던 테디 베어 인형에 ‘앨런 미즐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가 그리는 아버지와 남성상을 투영했습니다. ‘앨런’은 당시 그와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이며 ‘미즐스’는 홍역이라는 뜻인데, 그는 자신이 앓았던 병과 친구 이름을 단순하게 조합시킨 앨런 미즐스를 자주 작품에 등장시켰습니다.
사실 페리의 작업 또한 이렇게 단순한 동기로 시작됐습니다. 시상식에 여장을 하고 온 그에게 사람들은 “지금 입은 옷이 당신의 여성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해 왔는데,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소탈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대답하듯 말합니다. “난 그냥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입는 것이 좋았어요.”
그리고 위대한 예술가와 도자기의 만남 역시 실제로는 그렇게 운명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우연적이고 단순했는데요, ‘포츠머스폴리테크닉’의 분방한 학풍 속에서 페리는 다양한 매체들을 마음껏 사용해보다 도자기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합니다. 그저 그 당시 흙을 만지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에 도예에 매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The Huhne Vase> 2014 Glazed ceramic, gold 67h×40cm diameter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페리의 도자기는 고전적인 모양을 갖췄지만 그 표면에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익살스럽게 새겨져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두고 ‘전통과 현대문화의 대화’라고 말하는 그는, 박물관에서 익히 볼 수 있는 도자기 형태로 작품을 만들지만 독창성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도자기를 ‘모방’ 한 뒤에 이것을 ‘다르게 해석하면’ ‘새로운 것’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 흐르듯 현재에 이른 것처럼 말하지만, 분명 그는 작가로서 철저히 고민하고 학습했습니다. “터너상을 받기 직전, 내 작품이 미술관에 놓인 것을 보고 나는 어떤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그의 도자기는 전통적인 도자기와 별다를 게 없었습니다. 장식적이고 유머러스한 감성이 표면에 덧입혀졌지만 결국 공예의 전통적 성향이 지나치게 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터너상을 수상하며 이런 고민을 떨칠 수 있었고 이후 아트마켓과 평단에서도 엄청난 명성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페리는 미술 시장의 엄청난 스타가 된 후에도 사람들이 원하는 작품보다는 스스로 끌리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듭니다.” 라는 그의 대답에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예술가들이 하는 것

<A Map of Days> 2013 Etching from four plates 111.5×151.5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오로지 나, 나, 나.” 페리의 초기작 또한 여느 젊은 예술가들처럼 개인적이고 자전적이었습니다. 그랬던 작가는 어느 순간 작품에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마시고, 생각하는지를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받는 교육, 그들이 찾는 장소 등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문화와 무의식은 과연 어떤 것일까? 테디베어를 새기던 작가는 이제 자신보다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돌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어떤 ‘논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말합니다. “결국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관계에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젠더’ 역시 그의 꾸준한 관심사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여자 옷을 입던 그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조각이며, 언제나 진행 중인 행위 예술가입니다. 이를 통해 관념의 경계들을 무너뜨리는 페리는 ‘창조적인 인격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레이슨 페리는 도자기, 테피스트리, 사진 등 익숙한 매체들을 이용해 그 안에 새롭고 신선한 레퍼토리를 담는 작업을 완성합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가 결코 아니며, 시각적으로 이끌리는 작품으로 치부되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미 그의 작업 안에 깃든 심오함을 압니다.

<Britain is Best> 2014 Hand embroidery; silk, glass beads, sequins, cotton thread<br>120×100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최근 그의 행보는 보다 글로벌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국제적 활약에도 그의 영국적 정체성은 오히려 확고해지고 있는데, 자신이 체험한 전통과 유머, 사회적인 연관성이 작품에 유입돼 스스로 마치 영국 대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든다는 그는, 그런 느낌을 은연중에 즐긴다고도 설명합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품을 만들면서도 그는 단 한 명의 어시스트도 두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작품이 나오고, 수십 명의 어시스트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현대미술에서, 어쩌면 그는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레이슨 페리는 스스로를 ‘컨트롤 광'이라고 말하며 무조건 자신의 방식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고, 실수가 나오더라도 자신의 손에서 나와야만 한다고 어필합니다. “실수에서 내 스타일이 나오는 겁니다. 아니면 결국 포토 리얼리즘과 다를 것이 뭐가 있겠어요?”
스튜디오에 고립돼 도자기를 만들고, 엄청난 규모의 테피스트리 스케치를 홀로 해내는 그이지만 그는 자신의 작업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습니다. “사람들 앞에 작업을 보이는 예술가로서, 내 직업은 물질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과 대중의 무의식이 통하는 것을 실감하는 작가는 바로 이것이 시각예술의 위대함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관객이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일어나는 일들, 작가는 알 수 없는 그 미스테리한 부분이 결국 그의 작품을 살아있게 만든다는 것이죠.
그에게 관객이란 비단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의 작품을 보고 예술이 좋은 것이라고 느끼는 것에 그는 더 큰 희열을 느낍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도대체 도자기가 갤러리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자기가 만들지도 않은 변기가 이미 예술이 되었다면, 내가 손으로 만든 건 황금이자 선물이라고” 과연 그레이슨 페리다운 코멘트입니다. ■ with ARTINPOST

  • <World Leaders Attend the Marriage of Alan Measles and Claire Perry> 2009

    Glazed ceramic 52×32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World Leaders Attend the Marriage of Alan Measles and Claire Perry> 2009 Glazed ceramic 52×32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 <I am a Man> 2014

    Patinated brass 59×30×33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I am a Man> 2014 Patinated brass 59×30×33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 <Idealised Heterosexual Couple> 2013

    Glazed ceramic 53×30×30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Idealised Heterosexual Couple> 2013 Glazed ceramic 53×30×30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 <The Huhne Vase> 2014

    Glazed ceramic, gold 67h×40cm diameter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The Huhne Vase> 2014 Glazed ceramic, gold 67h×40cm diameter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 <A Map of Days> 2013

    Etching from four plates 111.5×151.5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A Map of Days> 2013 Etching from four plates 111.5×151.5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 <Expulsion from Number 8 Eden Close> 2012

    Wool, cotton, acrylic, polyester and silk tapestry 200×400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Expulsion from Number 8 Eden Close> 2012 Wool, cotton, acrylic, polyester and silk tapestry<br>200×400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 <Britain is Best> 2014

    Hand embroidery; silk, glass beads, sequins, cotton thread 120×100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Britain is Best> 2014 Hand embroidery; silk, glass beads, sequins, cotton thread<br>120×100cm Courtesy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London ⓒ Grayson Perry

Profile

그레이슨 페리

그레이슨 페리는 영국의 저명한 현대미술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도자기, 주철, 판화, 테피스트리 등 전통적 소재를 사용해 작업하는 그는 각 재료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분류되고 그에 따라 생기는 시대의 감성과 지식이 무엇인가에 집중합니다. 페리는 현대생활의 기록자로서 미와 유머, 그리고 두려움과 분노를 전달하며 관객을 자극하고 향수에 젖게 하는데요, 그의 직설적이며 정교한 공예품들은 복장도착자로 보낸 그의 어린 시절을 상징적으로 담으며 계급사회와 정치적 논란, 성, 종교 등의 사회적 주제를 함께 제시합니다.

2003년 터너상을 수상한 그레이슨 페리는 2012 왕실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된 바 있습니다. 2013년 여왕 탄신일 기념으로 대영제국 훈장 수훈자가 된 그는 2015년 대영박물관 이사 그리고 런던예술대학교 명예총장으로 임명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View more in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