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echnology #14: 디지털미디어의 진화와 현대미학
인터-미디어로의 진화

디지털 컨버전스의 과정

생물의 진화과정이 일직선이 아니라 다양한 분기점을 거치면서 각각의 종으로 변종화되어 온 것과 마찬가지로 미디어는 항상 다윈의 진화 개념처럼 “변화를 수반하는 유래”의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특히 컨버전스라는 과정, ‘디지털 컨버전스’라는 과정을 통하여 그 모습을 변종 시켜 왔고, 이런 과정은 우리의 삶의 모습조차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외면적으로 컨버전스가 일어나는 층위는 ‘물리적 층위’에서의 컨버전스입니다. 과거에 독립적인 장치였던, 통신기기 음악재생기, 동영상재생기 등이 하나의 기기로 묶인 아이폰 같은 휴대기기 등은 물리적 층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미디어가 됩니다. 오늘날의 컨버전스는 이런 물리적 층위의 결합이 아니라 물리적 층위, 코드-문법적 층위, ‘내용적 층위’라고 하는 컨버전스의 층위에서 중간 단계의 코드-문법적 층위를 기반으로 하는 컨버전스 현상입니다. 이전처럼 특정한 미디어의 물질성에 적합하도록 내용을 번역하거나 매개하는 층위가 아니라 매체적 정보를 융합하는 층위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되었고, 그 원동력은 바로 ‘디지털화’입니다. 디지털화는 텍스트, 사진, 음악, 비디오 등 모든 미디어적 정보를 중립적인 수적인 정보로 환원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복제하고 재조합 할 가능성을 열어줌으로써 과거 미디어들이 물리적 층위와 강하게 결속되어 있던 고리를 해체시키고 일종의 융합이 가능한 유연한 지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디어의 물리적 층위에 ‘달라붙어’ 있던 내용은, 즉 구현의 과정은 수적인 데이터파일로 변화되고 다양한 물리적 장치나 재생프로그램을 통해 재현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유롭게 편집 가능하고 재구성될 수 있으며, 복제 또한 무제한적으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에서 흔히 사용하는 ‘멀티미디어’란 개념은 오디오, 비디오, 데이터 비트의 혼합으로써, 이는 근본적으로 어떤 것에서 다른 것으로의 변환이 자유롭고 이질적인 비트들의 결함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디지털 층위에 고유한, 우리가 소위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이라고 부르는 내재적 문법은 따라야 합니다. 디지털화의 모든 과정이 컴퓨터라는 특정한 물리적 구조를 요구하며, 디지털화의 수준이라는 것도 현재의 하드웨어 기술 수준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또 아무리 디지털화된 정보라도 인간의 경험이나 미적인 체감을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물리적 방식으로 다시 재현되어야 합니다. 즉 텍스트, 음악 혹은 영상과 같이 우리에게 경험되고 미적으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결국 아날로그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감각 수용기가 작동하는 방식은 디지털화되지 않은 아날로그적 방식이며, 우리의 경험은 각각의 감각기관에 적절한 물리적 재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상호매체성과 재매개

디지털화라는 기술적 방식을 제외하면,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뉴미디어’는 존재했었고, 우리의 인지능력과 미적 감응력은 이미 그러한 뉴미디어들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뉴미디어의 심미적 경험에는 재매개화라는 과정과 상호매체성이라는 특징이 기반에 있습니다. 재매개화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한 언어로 된 텍스트를 또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그 과정이 단지 내용이나 의미를 전이시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해석과 이해의 과정이 수반되는 특징이 미디어에서도 적용된다는 개념입니다. 오늘날의 뉴미디어들은 회화, 영화, 텔레비전과 같은 기존의 미디어들을 인정하거나 그것들과 경쟁하면서, 또 그것들을 개조하면서 스스로의 문화적 의미를 획득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을 ‘재매개(remediation)’라 부릅니다. 이런 개념화의 전제는 각 매체가 단지 매개하는 기계가 아니라 일종의 언어와 같은 기호로 보는 것이고, 각 매체의 경쟁과 교섭의 과정을 “기호의 놀이”라고 상정하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그루신이 제안한 것으로 단순히 콘텐츠, 즉 내용만을 ‘순수한’ 그릇으로 다시 재사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디어, 매체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것입니다.
미와 숭고 사이, 그리고 창의성과 개혁성을 향해

현대 프랑스 사상가인 료타르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이후에 나타나는 문화 양식의 상태에 대하여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로 그 문화 조건을 규정하면서 “서사의 위기”와 “재현의 위기”를 주장합니다. 미학적인 문제들을 다양한 주제들과 연결하여 시대의 문화 상황, 의식 상태, 그리고 삶의 양식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료타르가 분석해가는 포스트모던의 문화와 삶의 양식에 대한 논의의 핵심에는 ‘숭고’라는 미학적 양태, 미학적 감수성이 있습니다. 료타르는 포스트모더니티의 개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계몽적 이성, 혹은 보편적 이성에 대하여 거부하고, 더 나아가 이성에 의한 인류의 진보라는 믿음에 대하여 회의하면서 예술적•미학적 이성이나 감수성을 중요시합니다. 리얼리즘적 재현, 즉 모방이 더 이상 예술적 실천의 힘이 될 수 없다고 믿으면서 ‘실재의 결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 즉 니체의 허무주의와 유사한 이 형태의 질문을 니체 이전의 칸트의 숭고미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 숭고의 미학적 원리야말로 근대예술이 그 동력을 발견하고 아방가르드의 논리가 그 원천을 발견하는 곳이라는 주장들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탈근대 예술 혹은 문학에 대한 미학적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의 숭고의 개념이 필수적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제임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숭고의 미학이라는 포스트모던적 미학은 오늘날 디지털 매체 시대의 미학적 감수성을 논의할 때 핵심적 사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감과 동시에 그에 수반되는 쾌의 감정도 느끼게 되는 모순적 경험을 인간은 할 수 있는데, 이런 즐거움과 고통, 기쁨과 두려움, 감정고양과 낙담 등의 모순적 감정에 대해 유럽에서는 숭고라는 이름으로 설명되는 경향이 있었고, 그것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 할 때의 미학적 양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양태는 어떤 예술작품이 발신자 즉, 창조자의 개념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 즉 독자나 혹은 청중의 개념에 기초를 두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료타르는 “수신자의 미학적 경험에서 나오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도 하는데, 실제로 현시대에서는 예술가를 발신자로 상정하고 작품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가 영향을 받게 되는 방식, 즉 어떤 미학적 경험을 하게 되느냐가 오늘날의 다매체시대에서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숭고의 미학의 핵심적 특징인 ‘비결정성’은 19세기를 거쳐 20세기가 되면서 미학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디지털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예술을 이해하는 미학적 감수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숭고란 미학적 양태 속에서, 수신자와 창조자의 역전관계 등은 인터랙티브 예술에 오롯이 적용될 수 있는 심미적 과정이 되었으며, 이런 새로운 방식의 미학적 경험들은 또 다른 문화적 예술적 해방의 가능성을 낳을 수 있습니다. 정치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 Ranciere)는, 예술의 미학적 체계 속에서 기존의 경계와 배치를 재구성하고 집단적 해방의 실천을 기획하면 그 가능성을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미학적 양상에서 찾기도 하는데, 오늘날의 ‘설치예술’ 등이 기존의 규범과 체계를 재분배하고 재구성하는 미학적 이론에 잘 적용되는 면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놀이, 목록, 만남, 신비’ 등의 요소를 가진 현대예술은 기존의 매체나 미디어 체제가 붕괴되고, 재현의 체제가 붕괴되고, 주제의 상황과 품격에 따라 그 표현양식이 결정되는 체제가 붕괴되는 것으로써, 기존의 질서를 와해하고 기존에 부과되었던 어떤 지위를 재배치하면서 분배하는 가능성을 감지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 미디어예술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은 료타르가 주장한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비결정성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것은 다윈의 진화론 혹은 ‘신다윈이즘’ 등의 논리에서 발견하게 되는 결정되지 않은 인간, 계속 진화 중인 인간의 종의 속성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유전자 속에 ‘쓰여진’ 코드가 그대로 온전히 다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한 몸 안에서조차, 세포들끼리의 만남과 환경과 혹은 조작에 의해, 혹은 알 수 없는 돌연변이에 의해 새로운 변종이 무한히 만들어질 수 있고, 인간은 그 진화의 과정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디지털미디어가 가진 진화적 속성 속에서 인간은 미학적 경험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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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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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2004 ⓒ 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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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Zigelbaum, Marcelo Coelho <Interactive Pixel T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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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cal Dombis <Irrational Geometrics>
2008 Video Installation 400×3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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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Derks <Hotel Oscar Tango Echo Lima>
Todays Art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