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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Technology #9: 과학기술의 개입

기술, 예술과 인간을 중계하다

Nam June Paik <Elephant Cart> 1999-2001 Mixed media 153×633×293cm  ⓒ Nam June Paik Estat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Kim Tae Eun <Time Loop> 2014 Image provided by SeMA

인간의 역사는 잠재적 현실(virtuality)과 경험적 현실(actuality)이 양존하는 세계에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인간의 경험적 현실이란 파도 소리처럼 분명하고 잡음이 없는 논증 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잠재적 현실은 파도 소리를 구성하는 물방울의 부딪힘처럼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논증 불가능한 상태를 뜻하지요.

실질적 효용의 가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구조 안에서 공존하고 이분화 된 세계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영화, 문학, 미술 등 예술전반의 분야는 오히려 이들을 매개로 생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것의 중계자는 바로 기술인 것입니다.

동시대 예술에 개입한 기술의 역할

Lee Bei Kyoung <Metropolis Metaphor> 2014 Image provided by SeMA

2001년 영화사에 발자취를 남긴 두 편의 대작 <쥬라기 공원3(Jurassic Park III)>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이 개봉됐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에 근거한 사실적 묘사에 개입된 기술로 있음직한 현실적 장관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에 비해 해리포터의 영상은 믿기 힘든 잠재적 현실이 기술을 통해 재현되는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의 경험적 현실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렸지요. 신화 속에서만 존재하던 상상이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와 실현되었고 영화가 상영되는 92분 동안 관객들은 현실감을 잃고 가상의 절대적 믿음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물론 기술의 속성은 생산자의 치밀하게 계산된 개입을 통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여 생산품을 유통시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첨단 기술의 개입은 이미지 생산자 입장에서 영상물의 마케팅 문구로 사용될 정도로 보증된 매우 매력적인 도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편에서는 첨단 기술로 잘 팔리는 이미지 만들기에 집중하고 열광합니다.

Lee Byung Chan <URBAN CREATURE-Galapagos> 2014 Image provided by SeMA

그러나 인간의 감정 중에는 외부요인에 의해 휘둘리는 대리 경험욕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파토스 (pathos)의 이면에는 인간이 실제로 겪고 사고하는 창조력의 상실이 존재하기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 장치를 활용한 자극적 스펙터클 이미지 생산은, 인간의 주체적 “겪음”으로부터 인간 스스로를 소외 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 개입에서의 잠재적 현실(virtuality)과 경험적 현실(actuality)에 대한 입장 차이는 예술 분야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집니다. 바로 기술의 수준이나 적용형식, 구현된 예술 언어의 효과보다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Dappertutto Studio 2013 Performanc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스펙터클이 인간의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위해서는 예술프로젝트의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예술가의 유명세, 귀한 예술 재료, 고난도의 재료 가공방식, 첨단 기술 동원 등이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곤 하지요. 예술가들도 자본의 욕망에 부응하듯 새로운 예술을 위한 혁신적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예술 프로젝트에 현대판 신화가 덧입혀지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예술어휘의 탄생은 기존과는 다른 생산방식과 기술 개입의 필요성을 시사합니다. 이렇듯 과거 예술의 보조수단과 아카이빙 정도로 활용되었던 디지털 기술이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예술의 생산방식에 적극 개입하고 있습니다.

예술 속 기술개입의 문제

Nam June Paik <Three Elements> 2000 ⓒ Nam June Paik Estat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기술력을 뒷받침한 혁신적인 신화를 덧입은 예술이 도시의 새로운 매력으로 회자되고 그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 속에서, 마치 현대 기술이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열어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주객 전도가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지요. 따라서, 기술도입에 대한 상반되는 의견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동시대 예술 속 기술개입이 야기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첫째, 기술 언어에 대한 소외를 들 수 있습니다. 신진 기술을 예술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습과 경험을 위한 상당한 노력이 수반됩니다. 물론 예술가 스스로 컴퓨터 코드를 만들어 적용할 정도의 기술을 습득할 필요는 없지만 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단순한 도구로써만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예술가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일부 예술가들은 기술개입이 예술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고 여겨 이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기술의 소비 방식입니다. 현대 기술의 특징은 변화의 속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술 자체의 발전 속도뿐 아니라 일상으로 스며드는 파급 속도 또한 빠릅니다. 기술은 다양한 분야의 시각문화에 깊게 개입합니다. 예술이 특정 기술의 어플리케이션처럼 유통되고, 보다 더 신기한 이미지 생산을 위해 점점 다양한 기술 적용을 필요로 합니다. 특정 기술과 연관된 새로운 예술 어휘가 대형 프로젝트에 적용되면, 이후에도 유사한 기술이 다른 예술에 적용되고 이미 만들어진 예술언어는 곧 식상해집니다. 바로 이 대목이 예술이 자칫하면 새로운 기술의 적용 방식을 실험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Ben Vautier <Living Flux Scultpure)> 1966 ⓒCOPYRIGHT 1964 BY FLUXUS,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으로, 예술의 소비방식입니다. 현대 도시 공간은 유명 예술가가 만든 매력 넘치는 예술품으로 이미지 마케팅하고, 문화는 마치 종교처럼 일상의 긴장을 씻어주는 ‘성지순례’의 역할을 합니다. 방문객은 예술품을 촬영해 SNS로 유통합니다. 이렇듯 예술은 사진, 동영상 등 이미지 형태로 소비되고, 예술 경험은 도시의 선전 문구나 블로거의 의견에 지배당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은 매체에 흡수되고 시뮬라르크로 잔존하며 네트워크상을 떠돌아 다닙니다. 일상의 잠자리까지 파고든 현대기술이 예술의 소비방식을 바꿔놓은 것이지요. 이렇게 유통, 소비되는 예술은 예술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잔상에 가깝습니다. 시각적 놀이터로 전락한 것이지요. 기술로 재편된 현대 예술의 이러한 소비 형태는 보편적 예술어휘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이처럼 생소한 기술 언어로부터의 소외, 기술 발전과 예술 진화간의 속도 충돌, 이미지 위주의 예술 소비 방식은 기술 개입 방식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데 있어 깊이 생각해야 할 이슈입니다.
역사 속에서 예술가들은 새로운 기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였습니다. 현대는 전문성이 과도하게 구분되고 파편화된 시대입니다. 과거 개인의 천재성과 재능에 의존했던 예술가의 위상은 다양한 기술의 보편적 보급으로 야기된 예술의 생산과 유통방식 변화로 인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예술이 기술에 대한 트라우마와 면역력을 갖기도 전에 거듭해서 변화하는 신진 기술의 생경함에 점차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마침내는 기술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기술은 이미 인간의 일상에 깊게 침투했습니다. 일상생활에 개입한 기술로 인간의 생활양식이 변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나날이 변모하는 동시대 생활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술의 본질은 시대정신을 담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Jung Sung Yoon <Eclipse> 2014 Wheel, gear, aluminum steel 9,000×600×2,000cm Image provided by SeMA

사실 앞서 예술과 기술의 관계의 전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 세 가지 관점은 기술에 대한 입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기술 언어 자체에서 기인한 소외보다는 기술의 개입으로 탄생한 예술의 스펙터클 이미지에 의해 소외된 것은 아닌지 고려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미지 위주의 예술소비방식에 대해 개탄하기보다는 변화한 동시대 생활양식을 반영해 예술에 대한 공간 경험을 확장할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예술은 현대 기술의 무자비한 질주 앞에 놓여있습니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Armand Trousseau)는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예술 향유 방식과 감성조차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요즘, 예술은 분야와 영역을 넘나들며 끊임없는 실험을 거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실험의 전제로 인간 존재에 본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짚어 볼 시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수반되어야겠지요. 이것이 동시대 예술이 가져야 할 기술에 대한 입장이 아닐까요? ■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쳐랩 대표 with ARTINPOST

  • Nam June Paik <Elephant Cart> 1999-2001 Mixed media 153×633×293cm ⓒ Nam June Paik Estat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Nam June Paik <Elephant Cart> 1999-2001 Mixed media 153×633×293cm  ⓒ Nam June Paik Estat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 Lee Bei Kyoung <Metropolis Metaphor> 2014 Image provided by SeMA

    Lee Bei Kyoung <Metropolis Metaphor> 2014 Image provided by SeMA
  • Kim Tae Eun <Time Loop> 2014 Image provided by SeMA

    Kim Tae Eun <Time Loop> 2014 Image provided by SeMA
  • Lee Byung Chan <URBAN CREATURE-Galapagos> 2014 Image provided by SeMA

    Lee Byung Chan <URBAN CREATURE-Galapagos> 2014 Image provided by SeMA
  • Dappertutto Studio 2013 Performanc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Dappertutto Studio 2013 Performanc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 Nam June Paik <Three Elements> 2000 ⓒ Nam June Paik Estat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Nam June Paik <Three Elements> 2000 ⓒ Nam June Paik Estat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 Ben Vautier <Living Flux Scultpure)> 1966 ⓒCOPYRIGHT 1964 BY FLUXUS, ALL RIGHTS RESERVED

    Ben Vautier <Living Flux Scultpure)> 1966 ⓒCOPYRIGHT 1964 BY FLUXUS, ALL RIGHTS RESERVED
  • Jung Sung Yoon <Eclipse> 2014 Wheel, gear, aluminum steel 9,000×600×2,000cm Image provided by SeMA

    Jung Sung Yoon <Eclipse> 2014 Wheel, gear, aluminum steel 9,000×600×2,000cm Image provided by SeMA
  • Lee Ye Seung <CAVE into the cave(Wild rumor)> 2014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Lee Ye Seung <CAVE into the cave(Wild rumor)> 2014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 Nam June Paik <Participation TV> 1968/1998 TV, Microphone Dimensions variabl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Nam June Paik <Participation TV> 1968/1998 TV, Microphone Dimensions variabl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 Rebecca Horn <La Ternura> 1994 Flamingo Feathers, Motor and Metal 51×223×89cm Samsung Museum of Art Collection Image provided by MMCA

    Rebecca Horn <La Ternura> 1994 Flamingo Feathers, Motor and Metal 51×223×89cm Samsung Museum of Art Collection Image provided by MMCA
  • Patrick Tresset <5 Robots Named Paul> 2012 Robotic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of the artist Image provided by MMCA

    Patrick Tresset <5 Robots Named Paul> 2012 Robotic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of the artist Image provided by MMCA
  • EXP LAP <From Future to Futurism> 2015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Image provided by MMCA

    EXP LAP <From Future to Futurism> 2015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Image provided by MMCA
  • Cha Ji Ryang <Virus of Timeline, Timeline of Virus> 2015 10' Multi channel video, sound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Cha Ji Ryang <Virus of Timeline, Timeline of Virus> 2015 10' Multi channel video, sound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 Mioon <Sea of Solaris> 2015 Stainless steel, LED lamp, motor Dimensions variabl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Mioon <Sea of Solaris> 2015 Stainless steel, LED lamp, motor Dimensions variable Image provided by NJP Art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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