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echnology #19:
기술적 이미지의 공간화
가상현실의 본격적 도약과 오늘의 예술


요즘 가장 이슈가 되는 디지털 기술을 떠올려 볼 때,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이하 VR)일 것입니다. 실제의 세계와 유사하지만, 실제가 아닌 인공 환경을 이야기하는 VR은 최근 급격한 자본과 기술의 집중이 이루어졌고, 구체적인 기기와 콘텐츠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 시청각적 요소들을 데이터화하고 그를 다루는 컴퓨터의 연산능력과 처리능력의 발달, 그리고 그 결과물을 표현하는 모니터와 프로젝터 등을 비롯한 각종 출력장치들의 발달로 그 효과와 가능성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체험의 문이 열렸습니다.
VR의 재시동,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의 출현과 의미

본격적인 가상 현실 체험기술이자 기기에 대한 기반 기술 연구로서의 시초는 1968년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의 컴퓨터 과학자 이반 서덜랜드(Ivan Edward Sutherland)의 HMD(Head Mounted Display)입니다. 그는 헬멧에 모니터를 달아 눈앞에서 이미지를 재생함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정보 습득과 이미지 체험을 위한 시도를 진행했습니다. 그 이전의 TV 같은 영상매체는 이미지의 체험에 있어 물리적인 구조상으로는 그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재생되는 콘텐츠는 현실과 닮아있지만 사각 프레임이라는 대상을 통해 현실과 확실하게 분리되었고, 관람자는 그저 프레임 안의 이미지를 감상하는 구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창문을 통한 이미지 체험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을 위한 시도로서 제시된 것이 바로 HMD입니다.

여기에서 나아가,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의 발표를 통해 HMD의 방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HMD 타입의 VR 헤드셋 기기입니다. 기존의 HMD기기들은 커다란 스크린 구현을 목표로 45~60도 정도의 시야각을 지니고 있었던 반면 오큘러스 리프트는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의 시야각인 110도를 구현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HMD 자체에 사람이 시야를 돌리는 행동에 반응하는 헤드트레킹 센서를 내장하고, 고개를 돌리는 움직임에 대한 화면 지연을 최소화시키는 등의 방법을 이용해 이용자의 환경 자체를 이미지로 덮어버렸습니다. 즉 이미지로 환경 자체를 구현함을 목표로 하여 몰입을 위한 디스플레이에 대한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 VR 헤드셋 기기는 기술 매체가 만든 기술적 이미지를 하나의 이미지 환경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합니다. 이곳에서 체험자는 기기에서 플레이 되는 영상을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안에 ‘존재’합니다. 오큘러스 리프트가 첫선을 보이고 개발자용 키트와 시험용 콘텐츠를 체험하게 했을 때, 사람들은 헤드셋을 쓰고 즐겁게 비명을 지르며 롤러코스터가 급격한 운동을 할 때마다 실제로 비틀거리고 쓰러졌습니다. 가상의 현실이고, 가상의 사건임을 알면서도 현실의 세계로 지각한 것입니다.
기술적 이미지의 공간화를 다루는 예술

예술의 영역으로 이동하여 살펴볼 예시로는 정연두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2014년 11월, 일본의 미토 미술관(Art Tower Mito)에서 개인전 <지상의 길처럼(Just Like the Road Across the Earth)>을 진행했습니다. 이 전시에서 그는 서울대학교의 MAGR(Music and Audio Research Group)와 함께 작업한 <Blind Perspective>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전시장의 40m의 복도를 가상의 공간과 합치시켰습니다. 실제 전시공간에는 쓰레기 더미가 있습니다. 대신 관람자가 VR 헤드셋을 쓰고 공간에 들어서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전시 공간과 쓰레기 더미의 좌표와 영상에서 보이는 자연 풍광의 나무와 바위 등의 좌표가 서로 합치하고 있기 때문에 관람자는 현실공간의 쓰레기 더미와 충돌하거나 다른 외부 요소의 방해 없이 가상의 자연환경을 체험합니다. 이전 도호쿠 대지진에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의 사건 직후의 폐허와 그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공간 안에 겹쳐 가상과 현실, 각기 다른 과거의 두 시점을 현재에 투영한 것입니다.

다니엘 스테그만 만그라네(Daniel Steegmann Mangrane)는 2015년 뉴욕의 뉴 뮤지엄(New Museum)에서 진행된 트리에날레 <관객을 에워싸다(Surround Audience)>에서 작품 <환영: 모든 동물의 왕국과 모든 짐승들은 나의 이름이다(Phantom (kingdom of all the animals and all the beasts is my name)>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 역시 VR 헤드셋을 이용하여 전시장을 숲으로 바꾸었습니다. 장치를 쓰기 전에는 여느 미술관과 다를 바 없는 화이트 큐브이지만, 장치를 착용하면 이내 공간은 브라질 남부의 마타 아틀란타(Mata Atlântica) 우림지가 됩니다. 관람자는 그 세계를 걸으며 체험합니다. 작가가 수집하여 만들어낸 그 장소의 데이터는 관람자가 실제로 감각하고 체험한 공간이 됩니다.
2015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주제전 <Post City>에 초대된 〈시드라에게 드리운 먹구름(Clouds over Sidra)〉도 비슷한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크리스 밀크(Chris Milk)가 제작한 이 영상은 최근 유럽이 맞닥뜨리고 있는 시리아 난민사태와 중동 인구의 유입에서 드러난 전쟁과 재해, 인구 증가로 발생하는 도시 내 구조와 사회 변화에 대해서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영상에서는 시리아 난민 13만 명이 수용되어있던 자타리(Zaatari) 난민 수용소에서 18개월간 생활하고 있던 어린이 시드라가 그곳에서의 생활을 담담히 서술합니다. 밀크는 이 다큐멘터리를 오큘러스 리프트를 이용하여 360도의 가상 환경을 구성하는 비디오 작업으로서 선보였습니다. 관람자는 화자인 시드라와 같은 공간에 위치하게 됩니다. 시드라가 관람자의 눈앞에서 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관람자는 고개를 돌려 시드라와 관람자가 위치한 공간의 다른 풍경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다른 사건들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즉 기존의 다큐멘터리보다 더욱 생생한 현장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효과적인 내러티브와 기술과의 결합인 것입니다.
현실과 가상의 분리와 융합, 그 안에서의 예술의 가능성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는 네트워크를 통해 먼 곳의 현실을 불러오거나 조작하는 사회, 즉 다른 곳의 정보들을 모아 이곳 내가 있는 공간의 내 눈앞에서 구현되어 물리적으로 유사하거나 과잉된 경험을 하고 다시금 피드백을 보낼 수 있는 현실로서의 텔레마틱 사회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공간의 확장을 의미하며 호모 루덴스적 인간의 탄생을 통한 긍정으로 귀결됩니다. 반면, 기술이 오히려 두 세계를 확실하게 구분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키틀러(Friedrich Kittler)는 기술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실재계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즉 사람들이 기술 매체를 기반으로 파악하는 상황은 그 이전까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걸러지지 못했던 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하여 새롭게 알게 된 지각과 기존의 것을 구별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여러 사유와 예측들은 어느 한 방향이 강조되기보다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맞물려 서로가 혼합되어 크게 부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시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VR은 기술적 이미지의 표면으로서, 그리고 텔레마틱 세계의 입구로서의 기존의 틀을 깨고 확장된 환경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흐름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가상과 물질세계가 혼재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차이는 존재하며 그 차이는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예술은 그런 상황에서 특정 시각을 강화하고 확대하여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이면을 우리의 눈앞에 제시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여러 예술 작업들은 VR이 가질 수 있는 오늘날의 특별한 지각 체험과 의미를 집중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 게임이나 TV 프로그램을 비롯해 예술과 같은 비일상의 영역까지, 차이를 돌아다니는 산책자로서의 자세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합니다. ■ with ARTINPOST
-
Daniel Steegmann Mangrane <Phantom (Kingdom of all the animals and all the beasts is my name)>
Virtual reality environment, oculus, optitrack tracking system Developed by ScanLab Projects, London
New Museum Triennial, Surround Audience, New York, 2015 / Image from http://www.danielsteegmann.info/works/41/index.html -
Daniel Steegmann Mangrane <Phantom (Kingdom of all the animals and all the beasts is my name)>
Virtual reality environment, oculus, optitrack tracking system Developed by ScanLab Projects, London
New Museum Triennial, Surround Audience, New York, 2015 / Image from http://www.danielsteegmann.info/works/41/index.html -
정연두 <Blind Perspective> 2014 전시장 설치 이미지
출처: 작가 비디오 사이트 https://vimeo.com/150754289
-
정연두 <Blind Perspective> 2014 VR 헤드셋 내부 이미지
출처: 작가 비디오 사이트 https://vimeo.com/150754289
-
정연두 <베길리우스의 통로> 2014
오큘러스 리프트를 이용한 3D 영상
-
Haru Ji & Graham Wakefield <Flux in the Allo Sphere> (panoramic photograph) 2012
Image from http://artificialnature.mat.ucsb.edu/flux.html
-
HMD가 실용화된 오큘러스 리프트에서 보는 가상현실 시야
-
오큘러스 리프트, 2016년 상반기 출시 예정
-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와 기존 HMD의 시야각 비교 설명 이미지
출처: 오큘러스VR 홈페이지 비디오
-
Haru Ji, A 33 foot diameter sphere sits inside a three story, 2,000 square foot, nearly echo-free chambe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Allo Sphere Research Group
Image from http://discovermagazine.com/2014/julyaug/15-fantastic-voyages
-
<VR 1280 HMD>
햅틱과 HMD기술 외에도 영상, 소재, GPS 등 모든 기술들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여 적절히 결합될 때 가상현실(VR)은 현실만큼이나 실재적이 될 것
-
제프리 쇼(Jeffrey Shaw) <T-Visionar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