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echnology #1: 리차드 듀퐁
3D 기술을 통해 인간 존재를 묻다

3D 기술의 흐름 속, 듀퐁

앞으로의 세계를 선도할 기술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아마 많은 기술들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3D 스캐닝과 3D 프린팅 기술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술들은 ‘1인 제조업 시대’를 일으킬 기술들로 주목받고 있는데 즉, 3D 기술의 발달로 머지않아 간단한 기계들을 통해 가정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물품들을 직접 가정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가 열리면, 그 어떤 수작업도 없이 물건을 스캔하여 혹은 설계도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3D 프린터를 통해 그 물건을 똑같이 생산해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역시 지난해 열린 첫 국정연설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제3의 산업혁명’이라고 규정하고 “3D 프린터를 통해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공언하면서 새 시대에 대한 긍정적 열망을 표시한 바 있습니다. 사회에서의 이러한 폭풍적인 기대치를 반영이라도 하듯, 예술계에도 자연스레 3D 스캐닝과 3D 프린팅 기술이 접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작가 리차드 듀퐁(Richard Dupont, 1968-)이 있습니다.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자소상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듀퐁은 본래 인간의 신체, 자기-지각과 정체성에 대한 주제에 천착해왔습니다. 대학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했음에도, 그의 전공이 고고학이 명시된 학부에 속해있었던 터라 인류의 역사, 인간 실존 등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들이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며 초기작에서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작업 전반에 걸쳐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해 오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작업에서 ‘자소상’은 빼놓을 수 없는 형태이자 개념인데, 자소상을 왜곡하는 방식을 통해 기술과 목적에 의해 현대인의 정체성이 굴곡 되고 이완되는 모습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즉, 인간이 스스로를 인지하는 것 이상의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함으로써, 문명을 답습하며 일방적인 시각으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반성을 촉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D 기술로 만든 분신
듀퐁에겐 자신의 분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고, 이에 3D 기술을 도입하게 됩니다. 그가 작업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스캐닝 기술을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2년 전인 2002년으로, 당시에는 사회에서조차 굉장히 소수만이 이런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어서 모델을 빨리 제작해주는 회사를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의 신체를 레이저 스캔하여 하나의 3D 디지털 모델을 만들어냈고, 여기서 산출된 데이터 값을 변형하여 실제 형태를 다르게 왜곡시키는 작업을 선보여 왔습니다. 매체 역시 조각이나 설치에 국한되지 않고 드로잉, 프린트, 애니메이션이나 회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추구해왔습니다.
Terminal Stage, 180, Head 그리고 최근작

<Terminal Stage>(2008)

Installation at The Middlebury College Museum of Art 2011
예컨대 대표작 <Terminal Stage>(2008)에서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신체 모델을 등신대보다 크게 확대하고 납작하거나 넓게 표현해 공간을 압도하는 직립 형상들을 선보였으며, <180>(2009)에서는 이라크 전쟁에서 영감을 받아 수많은 자소상을 겹쳐 쌓아 쓰러져 있는 인간 군상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비교적 최근작인 ‘Head’ 시리즈(2011-)에서는 자신의 두상을 스캔해 확대한 투명한 레진 외형을 만들어 자신의 기억이 간직된 다양한 물품들을 그 안에 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듀퐁은 지난해 10월 16일부터 올해 6월 1일까지 뉴욕의 Museum of Arts and Design(이하 MAD)에서 열린 3D 프린팅을 이용하는 작업들을 선보이는 전시 <손을 넘어선: 포스트-디지털을 구체화하기(Out of Hand: Materializing the Postdigital)>에 참여했는데, 수많은 작업들 가운데서도 그의 작업 두 점은 단연코 돋보였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두상을 본떠 그 형태를 왜곡시킨 거대 알루미늄 조각 <Going Around by Passing Through>(2013)로 야외에 설치됐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신체를 스캔하여 형태를 변형한 자소상 <Untitled #5>(2008)로 전시장 내부에서 선보였습니다.

기술적 도약
듀퐁의 최근작들을 살펴보면 기술적인 면에서의 도약이 엿보입니다. 수 년 사이에 제조산업(industrial fabrication, 인더스트리얼 패브리케이션)이 굉장히 크게 성장해 모델 제작자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됐고, 기술의 방식도 다각화되어 작업에 더 적합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 덕분입니다. 하여, 재료의 경우,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한 레진(합성수지), 폴리우레탄과 실리콘 등 이전에는 예술과 관련이 없던 재료나 매체들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도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동시에 “과거 작업과의 연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청동(Bronze)나 알루미늄, 플라스틱 역시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또한, 작업에 직접적으로 도입하는 기술에 있어서 3D 프린팅 기술의 경우, 주로 SLA와 SLS 방식⑴을 사용하고 있으며, 3D 스캐닝 기술에 있어서는 여전히 레이저 스캐너를 사용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정교해진 방식들을 다각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듀퐁은 작업에서 한층 정세하고 풍부해진 표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주석
⑴ 3D 프린팅 기술에는 FDM, SLA, SLS, EBM, DLP, LOM, 3DP³ 등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SLA(Stereolithography Apparatus) 방식은 특정파장의 빛에 의해 소재가 굳는 것을 이용한 광경화 방식으로, UV 레진을 사용합니다. SLS(Selective Laser Sintering) 방식은 특정온도에서 소재를 고형화하는 방식으로, 레이저를 분말 소재에 조사해서 해당 영역만 굳힙니다.

기술을 통해 기술을 비판하는 최전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듀퐁의 작업 내용은 인간에 대한 다양한 미학적 이슈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이에 적용되는 기술들은 그 이슈 바깥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신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이오메트릭(biometric, 생물측정적) 기술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즉,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왜곡된 외형은 다양한 가능성을 표시하는 것이면서도, 신체의 상품화나 가상현실의 효과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듀퐁은 3D 스캐닝과 프린팅 기술이라는 최전선의 기술들을 이용함으로써, 이러한 작업 내용과 표현을 한층 심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과 함께하는 미래
듀퐁은 전세계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3D 기술들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3D 기술들은 새로운 산업혁명으로서 3D 프린팅을 일선에 세워 이미 세계를 바꾸고 있다고 말합니다. 새 기술의 사용자는 점점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리고 본인 역시 앞으로도 계속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3D 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힙니다. 발달하는 기술을 적용해 기술에 심취하는 세계를 비판하는 그가 그 경계의 최전선에서 앞으로 어떤 작업을 선보일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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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Around By Passing Through>
2013 Cast Aluminum 180"×81"×75" / Presented by the New York City Department of Transportation’s Urban Art Program and the Museum of Arts and Design in association with the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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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minal Stage>
2007-2008 Pigmented cast polyurethane resin in 9 parts each 80” high Overall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Lever House Art Collection New York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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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minal Stage>
2007-2008 Pigmented cast polyurethane resin in 9 parts each 80” high Overall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Lever House Art Collection New York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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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at The Middlebury College Museum of Art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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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in One (Self Anointed)>
2002-04 Pigmented polyurethane resin, aqua resin, handmade clothes 70”×108”×108” Collection MoMA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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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Kumon Corporation Korea Collection 2012- Ongoing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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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1>
2013 Vacuumformed Kydex (a wall relief made from a digital scan of the earth's sur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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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ya>
2011 a sculpture in cast aluminum made from a digital scan of a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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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5)>
2008 Pigmented cast polyurethane resin 80"×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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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e Figure(1)>
Solid cast bronze 30"×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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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e Figure(1)>
Solid cast bronze 30"×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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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osite Figure(1)>
Solid cast bronze 30"×17.5"×8"
Profile

뉴욕에서 태어나 활동하고 있는 작가 리차드 듀퐁은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를 시각예술과 예술, 고고학 전공으로 졸업했습니다. 뉴욕의 퀸즈 뮤지엄(The Queens Museum), 트레이시 윌리암스(Tracy Williams), 한국의 MC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으며, 최근 뉴욕의 예술과 디자인 미술관(The Museum of Arts and Design, MAD)에서 3D 스캐닝과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큰 이목을 끌었습니다. 작가가 이 전시에서 선보인 15피트의 알루미늄 조각 <Going Around by Passing Through>는 작가의 첫 외부 공공 프로젝트로 성공적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