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echnology #28: 콰욜라
신기술의 발현

조각하는 로봇

오스트리아 린츠에는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융복합의 메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가 있습니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스티로폼을 깎아나가는 진동 소리를 마주했습니다. 전시장에서 완성품이 아닌 조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꽤 신선한 경험일 텐데, 심지어 그 주체는 사람이 아닌 로봇이었습니다. 런던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아티스트 콰욜라(David Quayola)의 작품 <Sculpture Factory>는 베를린과 린츠 등의 지역에서 선보여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제는 작품을 전시할 때 실제 조각을 보내는 대신 데이터를 전송한다는 겁니다. 데이터 전송만으로 작품 실현이 가능합니다. 물론 사진이나 영상작품에서는 이런 사례가 많지만, 이번엔 조각 작품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이 같은 일을 현실화한 작가가 바로 콰욜라입니다. 작가는 데이터를 전송하고 실제로 조각을 만드는 건 로봇입니다. 그동안 빅데이터를 시각화한 작업으로 이름을 알린 콰욜라는 디지털 제작 방식의 신기술을 도입한 새로운 예술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디지털 페브리케이션과 전통 조각

콰욜라는<Sculpture Factory>를 통해 급변하는 신기술을 예술로 끌어왔지만, 작품엔 근본적으로는 전통 조각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담겨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논-피니토(non-finito, 미완성)’ 개념에서 영향을 받아, 진짜와 가짜, 형태와 사안, 실재하는 것과 인공적인 것,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긴장을 탐구합니다. 이 작품에서 산업용 대형 로봇은 작가가 송출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고대 그리스의 걸작 <Laocoon and His Sons>를 실시간으로 조각합니다. 전시장에서 생생하게 제작되는 조각은 끊임없이 변주하고 무한히 변형됩니다. 비록 완전한 인물을 완성하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새로운 물질성과 표현법을 발견하게 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예술가가 아이디어만 구상하고 데이터를 전송하고 로봇이 그것을 완성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예술에서 아이디어와 개념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콰욜라가 고전 회화와 조각을 표현하는 이 기법은 디지털 페브리케이션(digital fabr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3D 모델링 소프트웨어(3D modeling software)나 CAD(computer-aided design)를 활용한 기법을 말합니다.
고전의 재탄생

작가가 2013년부터 몰두하고 있는 <Captives>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하는 조각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의도적으로 남긴 미완성 작품 <Prigioni>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으로, 기계적인 완벽함과 인간의 창의력 사이 긴장을 느끼게 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로봇은 일련의 알고리즘에 따라 낯선 전략과 패턴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듭니다. 기계의 지능과 다양한 가능성 뒤로 예술가의 독창적인 장인 정신이 담기게 됩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가수 지드래곤이 큐레이터로 참여한 <피스 마이너스 원>전에도 출품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작업과 마찬가지로 콰욜라가 도안을 디자인했지만, 그것을 깎고 조각한건 로봇입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CAM 소프트웨어를 접목한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기법으로 예술작품을 제작을 시도한 사례는 최초였고, 그만큼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작가가 꾸준히 연구 중인 ‘Iconographies’ 시리즈는 치밀한 계산 방식을 통해 르네상스와 바로크식 명화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입니다. 작가는 캔버스 속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장면을 복잡한 디지털 형식으로 변형합니다. 이렇듯 도상학의 내러티브를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그림은 기존에 지닌 맥락을 잃고 새로운 관찰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목적은 기존 주제에 새롭고 현대적인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림의 대체 버전을 제안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정을 통해 오래된 명작을 현대적 추상화로 변형시키는 이 작업에서, 원본은 온전히 새로운 진정성을 획득합니다.
다양한 형식의 시도

콰욜라는 한 가지 형식의 작업에만 머물지 않고 모션그래픽, 사진, 기하학,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하는 조각, 시간 기반 디지털 조각,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몰입형 인스톨레이션,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선보입니다. 애니메이션 페인팅과 조각을 하이브리드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기도 하고,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 드로잉 또한 그의 영역입니다. 특히 데이터를 기반으로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물을 생성하며 고전적인 형상과 현대 추상 사이의 놀라운 충돌을 보여줍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명작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작업 시리즈를 통해 독창성과 창의성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과 섬세한 붓의 움직임을 기하학적인 모션 그래픽으로 재탄생시킵니다. 회화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탐구하고 분석하기 위해 자체 소프트웨어까지 제작해내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약으로, 오리지널 명작과 컬렉션은 날것의 캔버스가 됩니다.

한편, 그는 파리 노트르담(Notre Dame)과 이탈리아 바티칸(Vatican) 등 문턱이 높은 유럽의 교회, 극장, 박물관의 예술과 건축에 커미션하기도 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합니다. 그만큼 유럽에서는 예술가로서 콰욜라에 대한 신뢰가 높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잦아지길 바랍니다. 데이터를 전송 기법을 이용한다는 그는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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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coön #D20-Q1> 2016
Installation view at Canary Wharf,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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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coön #D20-Q1> 2016
Installation view at Canary Wharf,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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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ographies #81, Adoration after Botticelli> 2015
Installation view at Nome Gallery,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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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ographies #81, Adoration after Botticelli> 2015
Installation view at Nome Gallery,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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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ulpture Factory> 2016
Installation view at Drive, Ars Electronica,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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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coön Fragment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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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coön Fragment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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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ographies #20, Tiger Hunt after Rubens> 2014
Installation view at Bozar, Bruss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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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rdins d’Été> 2017
Stills from 4k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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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ant Places> 2015
Installation view at Glow Festival, Eindho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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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ant Places> 2015
Installation view at Glow Festival, Eindhoven
profile

콰욜라는 런던을 기반으로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한국 서울시립미술관,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ictoria & Albert Museum), 브리티쉬 필름 인스티튜트(British Film Institute),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Park Ave Armory), 브뤼셀 보자르(Bozar), 파리 팔레드 도쿄(Palais de Tokyo), 바르셀로나 MNAC(Museo National d’Arte de Catalunya), 도쿄 National Art Center, 베이징 UCCA(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 밀라노 트리엔날레(Milan Triennale) 등 아시아, 유럽, 미주 지역을 넘나들며 굵직한 예술 기관과 행사에서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2013년에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에서 골든 니카(Golden Nica)상을 받으며, 다시 한 번 주목 받았습니다. 또한,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London Contemporary Orchestra), 앙상블 인터콘템포레인(Ensemble Intercontemporain), 보르도 국립 오케스트라(the National Orchestra of Bordeaux) 등 작곡가, 오케스트라, 음악가 등과 협업한 다양한 음악적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