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echnology #30: 이안 쳉
즉흥적 가상현실

영화와 게임

이안 쳉(Ian Cheng)은 컴퓨터 제너레이티드 아트를 주로 선보이는 중국계 미국인 예술가입니다. 컴퓨터 제너레이티트 아트란 컴퓨터로 만든 모든 예술을 통칭하는데, 그는 비디오 게임 디자인과 인지과학 원리에 따라 가상현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라이브 시뮬레이션’을 선보입니다. 게임으로 가상 상황과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영화에 관한 관심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영화광이었던 어머니 덕분에 하루에 영화를 여섯 편씩 볼 정도로 영화와 밀접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미술과 인지과학을 전공한 후에는 특수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Industrial Light & Magic)에서 근무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스타워즈(Star Wars)>와 <트랜스포머(Transformers)>의 특수효과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쳉은 영화를 볼 때 영화 속 내러티브가 고정돼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영화는 이미 서사가 정해져 있어서, 관람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영화적 연출을 바꿀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러한 아쉬움을 넘어서기 위해 그가 선택한 매체가 바로 비디오 게임입니다. 쳉은 플레이어가 게임 캐릭터의 삶을 통제하는 ‘심즈(The Sims)’를 아주 좋아합니다. 심즈의 플레이어는 ‘심(Sim)’이라고 부르는 게임 캐릭터가 환경과 상호작용하게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쳉의 작업도 심즈와 유사한 맥락으로 진행됩니다.
영화의 가상현실과 쳉의 가상현실

게임 속 삶도 영화 속 삶도 모두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가상현실은 관람객이 오롯이 빠져들어 실제로 믿고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재현하는데 뜻이 있습니다. 쳉의 작업은 그 반대입니다. 그는 가상현실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가상현실을 파괴하려 시도합니다. 시뮬레이션을 깨뜨리는 것인데, 쉽게 말해 기본적인 상황만 설정해두고 그 이후는 모두 플레이어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처음 가상 생태계 내에서 활동할 캐릭터를 프로그래밍하지만, 여기엔 어떠한 저자의 개입도 통제도 없습니다. 캐릭터와 상황이 서로 영향을 주도록 남겨두고, 스토리나 결말을 정해놓은 가상현실이 아닌 자유로운 형태를 띠게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보다 더 사실적이며, 창조의 본질과는 더욱 가깝습니다. 쳉의 작품을 통해 시뮬레이션과 가상현실을 적나라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쳉의 시뮬레이션은 정리되지 않고 즉흥적인 데이터의 혼합물인데, 그가 만든 데이터는 제각각 성질의 데이터가 누적되며 만들어내는 비선형적이고 이질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게임 속 다양한 캐릭터와 상황이 결합하고 찢어지면서 의외의 변이를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그가 일반적인 서사구조를 파괴하려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오히려 내러티브 자체가 지닌 본연의 구조를 드러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쳉이 주로 쓰는 방법은 반복을 통해 내러티브를 생산하는 것인데, 일정한 반복이 아니라 꼬였다 풀렸다 반복하는 비선형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의 애니메이션에서 서사는 이어지다가도 끊기고, 매끄럽다가도 얽히고설킵니다. 창조자인 작가가 주체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데이터와 캐릭터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누적하며 새로운 결과를 이뤄내는 것입니다. 물론 예술가가 결과를 관리할 수는 있지만, 참여자에 따라 절대로 제어할 수는 없는 즉흥적이고 즉각적인 다양한 행위가 그의 작품에 축적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이브 시뮬레이션

최근 작가는 인지 진화의 역사에 전념한 3가지 시뮬레이션 시리즈 ‘Emissary trilogy’(2015-2017)를 완결 지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고정 결과 또는 내러티브가 없는 자유로운 애니메이션으로, 열린 결말로 구성돼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참여자에 따라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처음엔 기본 프로그래밍 속성으로 시작하지만, 저작자의 의도나 끝냄이 없이 자체적으로 진화하는 가상 생태계를 살아가는 것, 이러한 형식이 바로 서두에 언급한 ‘라이브 시뮬레이션’입니다. 쳉은 새로운 조합을 계속 만들어내는 비디오 게임 엔진과 모션 캡처를 사용하는데, 그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실제 동물이나 인간의 전산화된 버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완벽한 구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의 작품은 곧 결함 있고 불완전한 미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즉흥적인 불완전성과 프로그래밍한 시스템 및 캐릭터의 예측 불가능성이 그의 작품에 담긴 매력입니다. 시청자들은 라이브 시뮬레이션을 현실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한 변화를 대하면서 어쩌면 혼란스럽고 불안한 감정과 인지 부조화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쳉이 던져놓은 상황에 관람객이 라이브 시뮬레이션을 추가했을 때 어떠한 생생한 세계를 이룩할지, 그리고 관람객과 작가는 의외의 결과물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집니다. ■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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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ssary Forks At Perfection> 2015
Live simulation and story, sound, infinite d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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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ssary Forks At Perfectio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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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ssary Forks At Perfectio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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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ssary Forks For You> 2016
Live simulation, sound, Google Tango Tablets, infinite duration, Sammlung Migros Museum für Gegenwartskunst, Photo: Stefan Altenbu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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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ssary in the squat of gods> 2015
Live simulation and story, sound, infinite d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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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ssary in the squat of god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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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ssary in the squat of god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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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 ft. Ikaria> 2014
Live simulation, artificial intelligence services, sound, infinite d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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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Real Humans – Ian Cheng, Wu Tsang, Jordan Wolfson>
Kunsthalle Dusseldorf, Dusseldorf, Curated by Elodie Evers, Irina Raskin, 7 February – 19 April 2015 Photo: Achim Kuku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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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 thinking of you> 2015
Live simulation, sound, infinite d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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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 thinking of you> 2015
Live simulation, sound, infinite d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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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view <Ian Cheng : Emissary Forks At Perfection>
Pilar Corrias Gallery, 13 October – 14 November 2015. Courtesy of the artist and Pilar Corrias Gallery. Photo : Damian Griffiths
Profile

이안 쳉은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으로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쳉은 최근 뉴욕 MoMA PS1 개인전을 비롯, 취리히 미그로스 뮤지엄, 런던 필라 코리아스 갤러리, 토리노 폰다지오네 산드레토 리 리보덴고,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밀라노 라 트리엔날레 디 밀라노, 오슬로 스탠다드, 뒤셀도르프 오프 벤돔, 로스앤젤레스 배니티, 마이애미비치 포멀리스트 사이드워크 포이트리 클럽 등 세계 전역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또한, 워싱턴 허쉬혼뮤지엄, 클리블랜드 MOCA, 뉴욕 스컬프쳐 센터, MoMA PS1, 그린 나프탈리, 아티스트 인스티튜트 등 미국은 물론, 파리 뮤제드모던, 런던 필라 코리아스 갤러리, 베를린 쥴리아 스토섹 컬렉션 등 유럽 각지에서 열린 단체전에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뉴욕 MoMA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2013 리옹 비엔날레, 2014 타이베이 비엔날레, 2016 리버풀 비엔날레 등 다양한 비엔날레에 참가하며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