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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Technology #31: 히토 슈타이얼

이미지-현실을 관통하는 시선

동시대 미술을 통해 동시대를 직시하다

뉴미디어아트 분야에서 독일 아티스트 히토 슈타이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는 찾기 힘듭니다. 그 정도로 넷아트, 포스트인터넷아트 등 슈타이얼의 모든 이론과 작업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일컬어지는 광대한 개념을 관통합니다. 그는 이미지라는 키워드를 순수한 시각정보로 보기보다는 자본주의 저변에서 비롯된 영향, 정치적 환경 변화, 디지털이라는 기계적 조건과의 관계와 엮어 해석하는 작가입니다. 히토 슈타이얼은 미술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을 넘나듭니다.

2013년 일본의 예술 매체 <Art It>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전문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이 미술 분야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저 또한 영상 작가 이외에 무용수나 건축가, 문학 작가, 철학가, 시인 등으로 활동했지만 결과적으로 현대 미술로 돌아왔습니다. 예술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각자 다른 영역에 속한 사람들을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힌 것처럼, 그는 최근의 아트 씬에서 발견되는 움직임을 재빨리 포착하고 예리하게 분석하며, 동시대라는 유동적이고 포착하기 어려운 개념을 직시하고 발언하는 작가입니다.

슈타이얼의 시각 문법

장 보드리야르는 2004년 저서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에서 “모던 아트의 모험은 끝났다”며 “컨템퍼러리 아트는 오로지 ‘컨템퍼러리’ 그 자체에 불과하다”고 선언했습니다. 나아가 컨템퍼러리 아트는 오직 그것이 실시간으로 작동한다는 것과, 같은 시간대의 진짜 현실과 뒤섞여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만이 유일한 ‘진짜’라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예술을 홍보를 목적으로 작동하는 미디어 기술이나 디지털의 작동 원리와 다르게 생각할만한 차이도 없다고 일갈합니다. 즉, 동시대 예술은 한낱 이미지-피드백(Image-feedback)으로서, 예술과 현실을 분리할 수 없고, 단지 예술이 현실의 일부를 이미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반 미학적 의견입니다.

하지만 보드리야르가 비난하는 ‘이미지-피드백’은 슈타이얼의 작품에서 주효하게 사용되는 시각적 문법입니다. 색다른 기법, 전통적 시각 예술의 규칙을 따르기보단 현실에서 발생하는 이미지를 재료삼아 자신의 예술 개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는 그 자체로 오래 전부터 우리 주변을 이루는 요소였지만, 슈타이얼의 화면에선 마치 생명체처럼, 때로는 인간의 몸을 빌려 구체화됩니다. 이미지를 단순히 보고, 읽고, 제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순환하고 나아가며 오히려 거기에 사람이 참여하게 하는 주체적 움직임으로 승격시킨 것 입니다. 슈타이얼이 “이미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고, 제2의 천성(Images do not represent reality, they create reality, they are second nature)”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나아가 세상을 떠도는 수많은 ‘가난한 이미지(poor image)’의 변호인으로 나서기까지 합니다.

그는 평균 이하의 해상도로 압축되고, 전송되며 복사와 붙여넣기의 반복 속에서 떠도는 ‘가난한 이미지’를 향한 힐난에 대고 “가난한 이미지는 더 이상 진짜에 대한, 진짜 원본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그보다는 이미지 그 자체의 실체적 존재 조건들(순환, 분산, 균열적이고 유동적인 시간의 단락)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보수주의와 착취에 맞서는 저항과 전유에 대한 이야기”라고 옹호합니다. 이미지가 현실을 반영하고, 대표하는 것엔 관심이 없다는 그는 특히 복권된 이미지가 하는 것, 이로 인해 일어난 일들, 오브제로서의 이미지와 상황으로서의 이미지 사이에 발생하는 상호작용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사회의 불확실성을 그대로 담은 예술

2014년 슈타이얼은 런던의 현대미술학회(이하 ICA,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에서 선보인 <Liquidity, Inc.>로 동시대 예술이 지구적 공동체를 대표하는 개념이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주요 부동산 사업이 도시 공간을 재배치하고, 결국 도시를 변화시키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현대미술도 장소의 확산과 책임의 결여로 정의된다는 것입니다. 예술품은 경제적 자산이 되었고, 때로 공공성과 사적인 부가 충돌하는 아트마켓의 흥망성쇠를 보면 점차 소멸하는 공공의 공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38분 21초짜리 3채널 비디오에는 유동성/환금성이라는 이름의 법인(incorporation)이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작품은 전후 고도경제 성장 이후의 추락을 종합 격투기, 기후 체계, 노동, 정보, 시장의 유동성 등을 혼합한 우화로 보여줍니다. 제도나 통제와 같은 사회적 행태는 이제 더 이상 굳건하지 않고, 변화의 속도 역시 개인이 따라잡기엔 역부족입니다. 슈타이얼은 이러한 전 지구적 불확실성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알레고리적 어법으로 오히려 우리 시대의 가장 파괴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예술 속에 현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미술관을 전쟁터 혹은 공장에 비유하고 뉴미디어를 활용한 창작의 기술적 조건이 통제의 메커니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경쾌하게 끌어들입니다.

어떤 주제를 이야기할 때 여러 레퍼런스를 끌어들이는 글쓰기 방식처럼 그는 한 작품 안에서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듯한 장면을 등장시키곤 합니다. 갑작스레 들어간 전시장에서 영상을 마주치는 관람객은 시작과 끝이라는 정확한 지점을 포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누군가는 참을성 있게 앉아 결국 온전한 작품을 만끽하고, 대다수는 몇몇 장면만을 지켜보다 떠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Liquidity, Inc.>는 어떤 이에겐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으로 기억되거나, 또 다른 이에겐 도인처럼 조언하는 브루스 리(Bruce Lee)의 목소리만을 남길지도 모릅니다.

텍스트의 중요성

  • 슈타이얼은 작품과 글로 동시에 목소리를 냅니다. 그는 2014년 폴란드의 대표적인 아트 계간지 <SZUM>와 인터뷰에서, “저는 항상 글을 씁니다. 저널리스트로서 기사를 쓸 때도 글이 단순히 저의 비디오 작업을 묘사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시각 예술가로서 항상 글을 쓰며 트레이닝합니다. 이미지가 단순히 텍스트를 묘사하는 존재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반대로 제 글이 절대로 제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대한 묘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합니다. 저는 저의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 긴장이 유지되도록 꾸준히 노력합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 때로는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자신이 던진 화두를 시각언어와 문자로 실험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갈등, 모순, 긴장, 퇴락에 맞서는 전방위 예술가로서 투사적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이 동시대를 넘어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지’란 주제를 시대의 최전선에서 과감하게 논증한 그의 행보는 이미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예약해놓은 듯 보입니다. ■ with ARTINPOST

  • Hito Steyerl, Factory of the Sun, 2015

    Single channel high definition video, environment, luminescent LE grid, beach chairs, 23 minutes, Installation view from the Venice Biennale, German Pavilion, 2015,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Photography by Manuel Reinartz

  • Hito Steyerl, Factory of the Sun, 2015

    Single channel high definition video, environment, luminescent LE grid, beach chairs, 23 minutes, Image CC 4.0 Hito Steyerl,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 Hito Steyerl, Factory of the Sun, 2015

    Single channel high definition video, environment, luminescent LE grid, beach chairs, 23 minutes, Image CC 4.0 Hito Steyerl,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 Hito Steyerl, Liquidity Inc., 2014

    HD video, single channel in architectural environment, 30 minutes, Installation view from Artists Space, New York, 2015, Photography by Matthew Septimus,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 Hito Steyerl,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 2013

    HD video, single screen in architectural environment, 15 minutes 52 seconds, Installation view from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2014,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 Hito Steyerl,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 2013

    HD video, single screen in architectural environment, 15 minutes 52 seconds, Image CC 4.0 Hito Steyerl,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 Hito Steyerl, How Not to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 2013

    HD video, single screen in architectural environment, 15 minutes 52 seconds, Image CC 4.0 Hito Steyerl,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 Duty-Free Art, November 11th, 2015 - March 21st, 2016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Madrid, Spain

Profile

히토 슈타이얼은 1966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일본과 독일에서 영화와 철학을 공부했고, 오스트리아 빈 미술 학교에서 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영상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시각 예술가이자 미디어, 테크놀로지, 이미지 등의 주제로 흥미로운 글을 발표하는 저술가이기도 한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베를린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도쿠멘타 등 세계 유수의 미술전에 참가했으며, 베를린을 기점으로 전 세계를 오가며 활동 영역을 넓혀왔습니다. 현재 슈타이얼은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뉴미디어아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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