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echnology #17: 바이오 아트(Bio Art)
정보론에 근거한 예술 외연의 확장


전시장 벽에 사람의 얼굴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얼굴색과 비율은 실제 인간의 그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 얼굴은 몸통이나 머리카락 등의 부가정보 없이 오로지 ‘얼굴’ 그 자체만 가지고 있습니다. 얼굴 아래에는 길거리에서 주웠음직한 담배꽁초와 머리카락과 이들을 발견한 장소에 대한 사진과 주소 등이 놓여 있습니다.
바로 2015년 오스트리아 린츠 아르스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에 마련된<하이브리드 아트(Hybrid-Art)>전에 설치된 작품 <스트레인저비전스(Stranger Visions)>를 설명한 것입니다.
개인정보에 대한 생물학적 제언, Stranger Visions

이 작품은 미국 출신의 작가 헤더 듀이해그보그(Heather Dewey-Hagborg)의 프로젝트입니다. 과학-예술간 연구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그는 길과 공원, 화장실 등 공공장소에서 수집한 머리카락과 타액 등에서 추출한 DNA 정보를 토대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을 재현합니다. 생물체 또는 생명을 대상으로 하여 이를 주제로, 매체로서 다루는 작업을 우리는 바이오 아트(Bio Art)라고 부릅니다.
작가의 이 바이오 아트의 첫 시작은 본인의 상담코너(therapy session) 대기실이었습니다.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그의 시야에 벽에 걸린 액자 유리 틈새에 끼어있던 머리카락 한 가닥이 포착된 것이죠. ‘이 머리카락은 누구의 것일까’에서 시작된 관심은 ‘나는 이 머리카락 한 가닥으로 한 사람의 어디까지를 알 수가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확장되었고 곧 그의 작업이자 연구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라텍스 장갑과 핀셋, 수거용 백 등을 이용해 우리 주위의 장소에서 담배꽁초나 껌의 타액, 머리카락, 손톱 등의 샘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집한 인간의 유기조직들을 자신의 연구실로 가져와 DNA를 추출하는 과정을 진행합니다. 이 단계는 본격적인 생물학 실험의 과정입니다. 용매로 단백질을 녹이고 원심분리기를 거쳐 DNA를 분리하고 이를 증폭하고 분절한 뒤 전기영동 등의 과정을 거쳐 각 DNA 부위가 가지는 정보들, 예컨대 피부색, 눈 색깔, 성, 코의 크기 등을 분석하여 이를 예측 이미지로 조합한 후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출력하였습니다.

그는 법의학적 DNA 표현형 분석법(Forensic DNA Phenotyping, 이하 FDP)을 사용하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일반적인 과학수사기법으로 사용하는 DNA 분석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의 DNA와 용의자 DNA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여 수사에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FDP는 기존의 DNA 분석의 약점인 수집한 DNA와의 ‘비교 대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극복해 단지 수집한 사람의 조직만으로 그 사람의 외형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현재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은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며 피부색과 눈, 미간, 코, 귓불 등 각 지점 간의 거리와 높이 등 얼굴 형태 또한 정확성이 높아지는 단계에 있습니다.
그는 과학적 엄밀성에서 다소 떨어진 작가로서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물로 얼굴을 완성합니다. 무심코 눈에 띈 ‘이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일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한 작업은 과학적 엄밀함과 예술적 상상력을 넘나드는 과정을 통해 한 개인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유전정보가 수집되고 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감시와 검열이라는 첨예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인터넷의 개인정보 수집과 감시, CCTV와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위치추적 같은 기존의 감시검열 이슈가 육체적, 생물학적인 영역에서도 벌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 것입니다.
아트, 유전자코드를 수집하고 조작하다

바이오 아트라는 용어를 최초로 정립한 사람은 브라질 출신의 미술가 에두아르도 카츠(Eduardo Kac)입니다. 카츠는 지난 2000년, 프랑스 국립작물재배연구소(Institut National de la Recherche Agronomique)와 함께 어둠 속에서 자외선을 받으면 녹색 형광 빛을 발산하는 일명 ‘형광토끼(GFP 토끼)’ 알바(Alba)를 탄생시켰습니다. 알바는 유전자 중에 색체정보가 왜곡되어 체내 색소가 결핍된 알비노 토끼로, 카츠와 연구진은 이 토끼에 발광 해파리에서 추출한 형광 유전자(GFP, green fluorescent protein)를 주입하여 특정 파장의 빛을 쬐었을 때 형광 색을 내게 했습니다. 이 ‘연구’는 실용이나 연구목적이 아닌 미적인 목적이며 과정이었고, 실험실에서 유전자코드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바이오 아트는 접두어 bio가 밝히듯 생명과학의 대상과 기술, 방법을 이용한 근래에 나타난 새로운 예술 형태입니다. 생명 그 자체를 다루는 예술인 바이오 아트는 기존 예술이 다루지 않았던, 과학에서 다루던 주제나 대상을 중심으로 작업과정 중에 생명공학기술과 방법론을 사용합니다. 과학과 예술을 오가는 모습으로서 최초의 예술은 아니지만 생명체를 다루면서 등장하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기에 중요하게 인식되었습니다.

카츠는 연구소와 작가의 협업 결과물인 알바를 미술계에서 발표하며 스스로 상당한 논란과 관심의 중심에 섰습니다. 동물보호단체의 비난을 의식하는 한편 창작과 생산 주체 등을 이유로 연구결과를 그에게 넘기지 않았던 연구소와 분쟁을 벌임으로써 모든 것이 결국 유전자에서 비롯된다는 유전자 환원론을 인식시키고 인간이 생명을 다루는 범위 등 다양한 인문 사회적 논란을 발생시켰습니다.
오늘날 생물학은 유전체학(Genomics)과 생물 정보학(Bioinformatics), 분자의학(Molecular Medicine)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1940년대 시작된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과 그 연원을 함께 합니다. 분자생물학의 태동과 정보학(Informatic Theory와 Cybernetics)의 시작 시기가 같고, 분자생물학이라는 용어를 정립한 위버(W. Weaver)가 정보론자였다는 점에서 유전자를 정보로 바라보며 유전자 정보가 기록된 DNA를 해석하여 이를 수정할 수 있다는 분자생물학은 시작부터 정보론적 관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인간의 생물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이며 바이오 아트의 태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이오 아트는 생물학에서의 정보론적 관점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함께 탐구하며 그 논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또 예술의 범위 역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생물학과 예술이 만나 예견하는 교차로

매체이론가 플루서는 90년대에 생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개는 아직 붉은 점에 푸른 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왜 말은 아직 저녁 초원 위로 형광 색채를 발산하지 않을까…우리는 우리 자신의 프로그램에 따라 식물과 동물의 종을 창조하는 것을 상상케 하는 테크닉을 습득해 왔다.” 생물에 대해 새로운 미학적인 관점을 제시한 그의 예견대로 바이오 ‘아트’가 등장했고 유전자가 코디네이팅된 애완동물 ‘서비스’가 눈앞에 놓였습니다. 또한 우리의 유전적 질병 가능성을 예견하고 -또는 선고받는- 개개인의 유전자에 맞는 약품을 생산하여 처방하는 유전자 분석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생명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시각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유전자를 하나의 정보로 보면서 수정 가능하다는 태도는 위에서 언급한 유전자 결정론이나 인간중심주의적(anthropocentric) 이기주의 등의 치명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동반합니다. 우리는 예술이라는 방법을 통해 가능성을 상상하고 더불어 극단적인 선을 넘어 파멸을 향하거나, 너무 겁을 내어 과거를 답습하는 오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헤더 듀이해그보그의 작품이 생물학적 관점과 기술을 이용하여 생명체의 설계도인 DNA가 가지는 의미를 오늘날의 사회 구도에서 탐구하여 바이오 아트가 가지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말입니다. ■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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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er Dewey-Hagborg Installtino view of <Stranger 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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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ardo Kac <GFP(Green Fluorescent Protein) bunny A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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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er Dewey-Hagborg <Stranger Visions> 2012
3D prints, documents, found samples Dimensions v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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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er Dewey-Hagborg <Stranger Visions> 2012
3D prints, documents, found samples Dimensions v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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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er Dewey-Hagborg <Stranger Visions> 2012
3D prints, documents, found samples Dimensions v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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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er Dewey-Hagborg <Meta Data 1/6/13 12:15pm 1381 Myrtle ave. Brooklyn,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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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er Dewey-Hagborg <Sample 2(MtDNA Haplogroup: H2a2a1 (Eastern European) SRY Gene: present Gender: Male rs12913832: AA Eye Color: Brown rs4648379: CC Typical nose size rs6548238: CC Typical odds for obe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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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ardo Kac with Alba <GFP(Green Fluorescent Protein) bunny A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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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ardo Kac Exhibition view of <Genesis>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