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echnology #20:
미래를 사유하며 오늘을 본 시선의 파편들
제 20회 시드니 비엔날레


호주 ‘시드니 비엔날레’의 주제는 과학소설의 거장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인터뷰에서 유래합니다. “The future is already here—it’s just not evenly distributed”는 바로 우리의 눈앞에 다가온 미래, 당면한 현실에 대한 이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고 예측하는 것은 바로 현실을 위해서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가 과거를 기록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 또한 지금과의 비교를 위한 것이지요. 이번 비엔날레는 미래를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으로써 우리의 오늘을 다시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행사만의 독특한 매력은 전시 공간 이름에서부터 가늠됩니다. 총감독 스테파니 로젠탈(Stephanie Rosenthal)은 이번 ‘시드니 비엔날레’의 각 전시 공간을 ‘대사관’으로 명명했습니다. 대사관은 국가 간의 소통을 위한 연결 채널이고 대사관에는 소속한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상주합니다. 즉, 총 7개소의 ‘사상의 대사관(Embassies of Thought)’에 위치한 작품들은 각각 7개의 주제어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사람들 앞에 놓인 것입니다. 그리고 각 경계와 오늘날의 가상과 현실의 중첩을 이어주는 듯한 사이 공간(In-Between Spaces)을 배치하여 대사관이라는 이름이 상정하는 명확한 경계로서의 국경과 출입국 절차가 아니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불명확한 경계로서의 관계성을 드러냅니다.
실재의 대사관 (Embassy of the Real)

현재의 주요 이슈인 디지털화가 가속 중인 세상 안에서의 가상과 현실, 그리고 그 안에서 체험하는 단말로서의 우리 몸을 다루는 실재의 대사관. 이 파트의 압권은 단연 이불의 작업입니다. 이불은 현실의 대사관이 위치한 코카투 아일랜드(Cockatoo Island)가 가진 조선 사업의 호황과 쇠퇴라는 역사적 맥락 위에 산업용 재료들을 기반으로 한 거대 조각을 설치했습니다. 그는 이 섬에 위치한 1,640㎡ 규모의 거대한 터바인 홀(Turbine Hall)을 작품으로 가득 메워, 보는 이들을 압도시킵니다. 이불의 <Willing To Be Vulnerable>은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에서 선보인 <새벽의 노래Ⅲ>를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새벽의 노래Ⅲ>는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독일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의 <새로운 법령을 위한 기념비 Monument des Neuen Gesetzes(1919)>와 독일의 대형 비행선 ‘힌덴부르크 LZ 129 Hindenburg(1931)’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습니다.

작품의 모티브 힌덴부르크 비행선은 역사상 가장 큰 비행물체로 인류의 기술과 지성의 꿈을 함축한 대상이었습니다. 245m에 달했던 이 거대 비행체는 1937년 미국 상공에서 폭발, 추락했습니다. 당시 힌덴부르크의 사고를 보고했던 한 리포터는 “Oh, the humanity!”라며 절규하기도 했습니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와 과학, 기술의 발달은 유토피아라는 발전과 상상의 목표로 형상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더니즘이 가졌던 유토피아라는 목표와 거대서사라는 방법론이자 흐름은 세계 전쟁으로 인해 힌덴부르크의 추락처럼 종말을 맞았습니다.
이불은 <새벽의 노래Ⅲ>를 전시 공간 내의 건축적 환경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유선형 구조물과 투명한 기구, 그리고 유리 벽면처럼 보이는 많은 비닐 면들은 모더니즘 시대의 만국 박람회장을 연상케 합니다. 만국 박람회장이 모더니즘 시기,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욕망이 투영된 절정의 공간이었던 반면 작품이 놓인 코카투 아일랜드는 장소 특정적 폐허입니다. 그는 모더니즘 시대에 꿈꾼 미래의 이미지와 이곳 폐허의 과거라는 두 개의 역사적 레이어를 중첩하여 역사성을 구현했습니다.
소실의 대사관(Embassy of Disappearance)

소실의 대사관은 언어, 역사, 통화, 풍경이나 상황 등의 사라짐을 다룹니다. 다가오는 미래는 필연적으로 우리 곁을 떠나는 과거를 수반합니다. 기술의 발달은 분명 무언가에 대한 기록을 더욱 손쉽게 행할 수 있게 했고 불러올 수 있게 하며 공간에 대한 제약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떠한 위태함을 가집니다. 물질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분명 유한하지만, 오늘날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디지털은 휘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오늘날의 디지털 데이터에 대한 유지와 백업은 2중, 3중의 또 다른 백업본과 안전장치, 높은 관리비용을 동반합니다. 또 그 방대한 기록과 기록해야 할 사건과 기억들은 우리 인식 안의 기억들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작가 FX Harsono의 <The Raining Bed>(2013)는 영화에서 흔히 접하는 비 오는 아시아의 밤을 연상시킵니다. 네온사인이 흐르는 가운데 내리는 비는 시야를 뿌옇게 덮으며 그날 밤 어두운 도시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희미하게 묻어버립니다. <블레이드 러너> 등 많은 SF영화에도 등장하는 이런 도시의 분위기는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로서의 사회를 드러내는 이미지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정치적 발전의 반대편에 위치한 소수민족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는 이번 비엔날레에 중국식 침대와 이 위로 내리는 빗줄기, 그리고 비 뒤로 보이는 LED 패널로 구성된 작품을 선보입니다. 침대는 인도네시아의 중국계 혼혈세대 페라나칸(Peranakan)을 의미합니다. 페라나칸은 인도네시아에 유입된 중국인과 인도네시아 여성이 출산한 혼혈아를 지칭하는 언어로 다양한 문화적 환경이 혼합된 다문화를 상징합니다. 뒤쪽 LED 패널에 문장이 흐릅니다. ‘흐르는 빗물이 역사를 씻어버린다’라는 짧은 시는 많은 인종과 문화가 섞일 수밖에 없었던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의 상황과 그 안에서 망각되거나 사라지는 많은 역사 문화적 맥락들을 인식시킵니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대사관 (Embassy of Stanislaw Lem)

스타니스와프 렘의 공관은 그 이름 자체로 비엔날레 키워드인 미래를 대변합니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과학을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예측하고 상상하며 사유하는 사이언스 픽션 장르의 대표 작가입니다. 국내에는 소설 솔라리스(Solaris, 1961)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인간과 이질적 존재와의 소통에 대한 문제, 시간차로 인해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 오류 등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과학 기술과 인간 지성에 대한 고찰을 비관적 시각으로 다룹니다.
작가 히만 총(Heman Chong)은 이동식 서적 가판대를 설치하고 그동안 꾸준히 모아 온 렘의 중고 서적들을 전시했습니다. 방문자들이 각 책을 열람하고 구매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는 모임을 구성했습니다. 렘이 제기한 소통에의 문제의식은 바로 오늘날 호주를 비롯한 많은 다민족 국가와 다문화 사회의 문제 상황이기도 합니다. 렘의 미래상은 대부분 결코 넘을 수 없는 공감의 벽에 부딪히는 암울한 현실입니다. 상상에 의한 이런 미래의 좌표 하나는 다른 공관에서 볼 수 있는 과거의 좌표와 마찬가지로 오늘과 함께 놓고 볼 수 있는 비교의 축입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한편,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환경은 기술과 과학을 밑바탕으로 둔 미디어아트가 화자로 이야기해왔습니다. 한편 기술과 매체환경이 우리 일상으로 자리 잡고 보편화되면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표현은 예술 전반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결국, 첨단 기술과 디지털 장비를 다루는 ‘미디어아트’는 유효할 수 있지만 동시에 ‘미디어아트’라고 특정 지어 어떠한 형태나 장르를 설명하는 것이 이상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시드니 비엔날레’는 그런 상황을 드러낼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비엔날레 총감독 로젠탈은 가상과 현실에 대한 구도를 시작으로 인간과 기계, 자연과 과학, 실재와 허구 등 기존 미디어아트에서 단골로 다루던 키워드를 비엔날레 구조에 대입했습니다. ■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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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ul <Willing To Be Vulnerable> 2015-2016
Heavy-duty fabric, metalised film, transparent film, polyurethane ink, fog machine, LED lighting, electronic wiring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the artist Created for the 20th Biennale of Sydney Photographer: Ben Sy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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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ul <Willing To Be Vulnerable> 2015-2016
Heavy-duty fabric, metalised film, transparent film, polyurethane ink, fog machine, LED lighting, electronic wiring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the artist Created for the 20th Biennale of Sydney Photographer: Ben Sy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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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ul <Aubade III> 2014
Installation view (2014) at ‘MMCA Hyundai Motor Series 2014: Lee Bul’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Commissioned b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Sponsored by Hyundai Motor Company Courtesy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Photograph: Jeon Byung-ch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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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 Harsano <Raining Bed> 2013
Wooden bed, stainless steel, pump machine, water, ceramics, fabric and Light Emitting Diode (LED) running text 250 x 200 x 200 cm Courtesy the artist and ARNDT Art Agency, Berlin and Singap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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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 Harsono <Ranjang Hujan (The Raining Bed)> 2013
wooden bed, stainless steel, pump machine, water, ceramics, fabric, LED running text 200 x 250 x 200 cm Courtesy the artist and ARNDT Art Agency, Singapore and Berlin Photograph Leila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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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man Chong <Solaris - Stanislaw Lem> 2010
Acrylic on canvas 46 x 61 x 3.5 cm Courtesy the artist and Vitamin Creative Space Photograph: Heman C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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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man Chong <Everyday Life in the Modern World, What is the artist’s role today?, Protest, Intimacy> 2005
4 books and 4 perfume bottles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the artist and Vitamin Creative Space, Guangzhou Photograph: Heman C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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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 Schlingensief <The African Twintowers> 2005-2007
Multimedia installation, 18 flatscreen monitors, 18 videos, no sound, 165 x 421 cm (overall)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London and Zu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