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echnology #13: 아람 바르톨
디지털 미디어의 전면화에 저항하다


디지털 미디어는 과거의 미디어를 흡수하고 통합, 새로운 메타 미디어로서 과거의 미디어를 재매개합니다. 다분히 새로운 미디어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을 분해해보면 과거 우리가 사용해왔던 몇몇 미디어들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디어의 재매개, 즉 흡수와 통합은 미디어의 근본적 성질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가속화됩니다. 디지털은 0과 1, 두 숫자의 집합으로 우리 세계를 코딩하고 따라서 물리적 근거를 지닌 과거의 것들은 지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추상적 기호 덩어리로 변환됩니다. 우리는 이로부터 매우 기능적이고도 편리하며 쾌적한 미디어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혹은 공간적 한계에 묶여있던 미디어는 이로부터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진입합니다. 독일 출신 아람 바르톨(Aram Bartholl)은 이러한 미디어 세계의 전면화 특히 디지털 미디어로 인해 변화하고 있는 우리 환경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작가입니다. 앞의 언급처럼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에게 매우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그러한 변화로부터 잃어버리는 것들, 급격한 변화로 발생하는 혼란스러운 지점 역시 동시에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전면화에 따른 변화의 간격으로부터의 사유는 바르톨의 작업에 있어 매우 근본적인 메타포이자 작품의 맥락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가상과 현실/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극

그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Map>(2006)은 현실 세계와 가상 이미지의 세계를 연결하는 증강 현실적 설치입니다. 이 작품은 구글 맵의 목적지 표시 기능을 현실 공간에 설치한 작품으로 우리는 이로부터 현실과 가상 세계 사이의 접목 지점을 유쾌한 시선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낯선 곳을 여행하거나 모르는 지역을 찾아가기 위해 구글 맵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매우 친숙한 지표 이미지인 구글 핀(Google pin)은 어느새 익숙해진 가상 이미지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과거, 우리는 지도라는 미디어를 통해 현실 세계의 주요한 지표들을 표기해 왔습니다. 지도는 우리에게 가상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실제 영토, 공간의 축소 이미지였지만 모르는 길을 찾게 해주는 이정표 역할을 수행해주는 고마운 미디어였습니다. 다만,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지도는 매우 절대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입장을 고려할 수 없었습니다. 즉 어디에서 지도를 펼쳐 보더라도 지도는 항상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이용자가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경우에는 지도란 미디어의 효용성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디지털 미디어와 융합된 지도는 내가 위치한 실재 세계를 가상의 이미지에 정확하게 표시해줍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과거의 미디어들이 우리에게 선사했던 가상 이미지의 세계는 우리의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는 셈이지요. 디지털 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상적 이미지들은 더는 생경한, 낯선 이미지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현실과 명백히 구분되는 속성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아직은 그 간극이 명확한 가상과 현실의 중첩은 자신의 위치를 그리고 그러한 위치로부터 파악되는 현실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바르톨의 작업이 친숙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괴리감을 제공하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작품의 특성 때문입니다. 관람객들은 디지털 미디어 속 가상 이미지를 통해 현실 세계를 연결 지어 인식했지만, 이 작품은 현실을 통해 가상을 다시금 인식하게 하는 역설적 행위를 유발합니다.

<0, 16>(2009)은 이러한 가상과 현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분법적 경계를 허무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인터페이스는 매우 디지털적으로 느껴지는 픽셀라이징된 이미지로 구성됩니다. 그러나 제작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그러한 디지털 인터페이스 속에 가려진 아날로그적 과정이 나타납니다. 작품 뒤편에는 빛을 발산하는 환등기와 그 사이에서 움직이는 관람객의 움직임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아날로그적 행위, 즉 빛과 움직임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그림자 이미지를 마치 디지털 표면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작품의 표면만 보고 있으면 이 작품을 아날로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결국 이 작품은 아날로그 설치 작품입니다. 작품 제목 <0, 16>은 작품 스크린의 해상도를 의미하는 숫자들(인치당 픽셀 수)로 해상도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조악한 해상력을 나타내지만, 오히려 그러한 조약함에 의해 우리는 이 작품을 더욱 디지털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작업 방향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에 관한 선입견을 해체합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디지털의 표면 속에 감춰진 부드러운 연속체로 구성된 아날로그적 과정은 최근 불어오는 디지로그(Digilogue)적 흐름을 내포합니다. 디지털로 대체된 우리의 미디어 현실은 이제 더는 그것이 디지털임을 표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로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아날로그적 형태를 취하고 우리를 현혹합니다. 그러나 바르톨의 작업을 보면, 이러한 아날로그-디지털의 이분법은 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날로그로 보이지만 그 속은 디지털로 채워진 미디어 및 최첨단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인식되지만, 매우 연속적인 아날로그적 구성으로 채워진 오브제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이면을 예술적 표면으로

만약 <Map>, <0, 16>이 재기발랄하게 가상과 현실의 혹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극을 보여주었다면 <Dead Drop>(2010~2012)은 현재 우리의 디지털 네트워크가 지닌 모순점을 드러냅니다. 처음 디지털 개념이 제기되었을 때, 디지털은 그것이 지닌 확장 및 변환 가능성보다 그것으로부터 야기되는 경제적, 민주적 접근 가능성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디지털은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지닌 아날로그 미디어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의 동의어였고(성서적 비유로서) 기회의 땅이자 평등한 공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에게 디지털은 매우 상업적인 무엇으로 존재합니다. 인터넷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무한 공유의 장이었지만 이제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망은 그 줄기 하나하나에도 비용이 부가되는 현실 세계의 또 다른 버전이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즉, 데이터 전송을 위해서는 추가적(물질적) 자원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전송되는 망을 사용하는 데에는 비용이 부가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인터넷 세계,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한 데이터 공유의 문제는 과거 물리적 영토를 정복하고 이를 사유지화한 과거 봉건 제도의 행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술적인 가능성으로 제기되었던 사이버 스페이스인 데이터 네트워크망은 그것이 처음 열렸을 시기에는 분명 ‘멋진 신세계’였지만, 결국 그러한 공간 역시 자본주의적 체계 속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대안적인 민주적 공간 혹은 경제 자유 지역으로서의 사이버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르톨은 현재 미디어-데이터 환경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모순적 지점을 드러냅니다. 작품명 <Dead Drop>은 스파이들이 서로의 비밀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작가는 USB 메모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데이터를 넣어놓고 도시 이곳저곳 담벼락에 USB를 숨겨놓습니다. 익명의 대중은 맨해튼과 브루클린에 설치된 데드 드롭을 찾아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데이터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로부터 보이지 않는 데이터망에 비용이 부가되는 현재의 시스템에 저항합니다. 이러한 저항은 단순히 현재 미디어의 특정 지점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앞서 소개한 작품들 및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현대 기술 미디어의 특성을 전제하며,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그러한 기술 미디어가 제공하는 모순적 지점을 해체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그의 작품은 다분히 대항 기술적(Counter-Technology) 경향을 띱니다. 기술을 그대로 이용하기보다는 기술이 지닌 이면을 우리에게 예술적 표면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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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2009-2013 light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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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2009-2013 light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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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2009-2013 light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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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Drops> 2010-2012 Public interv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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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Drops> 2010-2012 Public interv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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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Drops> 2010-2012 Public interv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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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2006-2013 Public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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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2006-2013 Public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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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2006-2013 Public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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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2006-2013 Public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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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2006-2013 Public installation
Profile

아람 바르톨(Aram Bartholl)은 1972년 독일 브레멘에서 태어났습니다. 2002년 UdK-University of the Arts Berlin를 졸업한 그는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을 오가며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스위스, 쿠바,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페인, 슬로베니아, 이스라엘 등 세계 전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와 페스티벌, 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