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Technology #12: 아날로그 테크놀로지
Analogue Nostalgia

디지털 시대와 조우하는 아날로그

아날로그는 본래 어떤 신호의 양을 나타내는 일을 뜻합니다. 빛의 밝기나 바람의 세기 같은 자연적인 양이나, 속도 측정계나 온도계같이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들을 물리적으로 나타내는 아날로그는 상태보다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변하는 물리 값이 무엇인가로 치환되어 지시하는 이 운동은 작가가 계속해서 취하고 있는 붓질이 캔버스 위에 무엇인가로 치환되어 어떤 특정한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지시하고 있는 예술 행위와 닮아 보입니다.
특히 길이나 각도, 또는 전류같이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들로 실재하는 결과 값이 도출된다는 점은 예술가들에게 또 다른 작업 방식의 길을 만들어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디지털이 판치는 세상임에도 아날로그의 방식과 결과물을 선호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아날로그의 메커니즘이 자신의 예술표현 방식에 들어맞는다는 것이고 확실히 아날로그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날로그로 사유하는 예술

작가 양정욱의 작업은 삐거덕삐거덕 소리 나는 키네틱의 아날로그 구조물로 도출됩니다. 모터와 서로 맞물려 연결된 재료들의 향연은 어두운 방 안에서의 조명과 어우러져 하나하나의 주목도를 높이고, 내 눈앞에서 파악할 수 있고 실재하는 움직임은 아날로그의 강점이자 작가의 특색으로 나타납니다. 몸으로 체화된다는 말이 적절할까요. 작품과의 마주침은 관람객들을 거북이로 만들거나 노인 병원에 가게하고 혹은 내 아버지의 머리를 상상하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제목이 지시하는 스토리와 구조물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곧 작품의 움직임과 형태, 구조적 특징, 혹은 아우라가 그 빈 공간을 채우고 관람객은 이들을 이용해 구조물과 제목을 껴 맞춰 봅니다. 그의 작업이 첨단 기계가 아닌 직조되고 모든 움직임 과정의 원리가 노출되는 로우-테크(low-tecnology)라는 점은 세세한 촉각적, 시각적, 청각적 변화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게 하지요. 0과 1 사이의 무한 실수의 체험이 가능해집니다.

그런가 하면 앙드레 마에노(Andre Maeno)의 아날로그 기계들은 결과물이 아닌 결과물을 감상하거나 끌어내는 작동 장치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한편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정한 주제를 실현함에 있어서 내세우는 가정과 법칙, 그리고 그에 따른 기계의 구현화 과정입니다. 특히 그는 추상적 대상의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한 매체로써 아날로그 기계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목할 만하지요. 그의 최근 작업 <Daily Delay>(2015)는 과거의 자리를 다시 현재로 불러들여 같은 장소를 같은 공간 위에 중첩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인지하면서 가장 먼저 우리는 시각적인 부분을 주로 사용하지만 그의 작업은 장소를 녹음하는 과정이기에 우리는 그 곳을 청각으로 인지하게 됩니다. 과거에 녹음된 자리는 현재의 공간 안에서 재생됨으로 그 두 개의 장소가 같은 시간 위에 놓입니다. 그의 ‘24시간 딜레이’ 기계는 같은 공간을 청각화 하여 시간으로 분해하고, 동시에 관람객들을 한 곳에 있지만 동시에 두 곳에 같이 있게 합니다. 또 다른 작업 <Th*****-Some of Sound Equipment>(2011)는 사람들 각자마다 관념 속에서 정의된 각자의 천둥소리를 찾아 나서는 작업인데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관념을 떠올리기 위해 천둥소리에 관한 관념을 생각하게 하고 이를 소리로 구현화 시키고 있습니다. 일상이나 관념 같은 물리적인 대상이 아닌 비물질들을 아날로그 기계를 통하여 구현하는 작업방식은 그 구체화 과정의 틈 사이에서 여러 가지 상상력과 잠재력, 그로 인해 뻗어 나가는 또 다른 사유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수치화하고 계산하여 도출해내어 물질적이고 실제로의 구현을 원하는 아날로그는 추상과 구상의 접점을 관계시키는 트리거가 됩니다.
아날로그 테크를 드러내다

앞서 사유를 아날로그화 했다면 지금 소개할 작가들은 아날로그로부터 사유를 끌어내는 작업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아직 아날로그 기계가 가지고 있고 내포하고 있는 여러 현상이나 가능성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디지털로 넘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의 작품은 아날로그 매체만이 발휘할 수 있는 사운드나 신호 또는 현상들을 탐닉하고 탐구하며 오늘날의 일상적인 인식들에 비수를 꽂습니다.
전형산은 소리가 아닌 소리를 소리화 하는데요. 쉽게 말해 <불완전한 사실성 #10>(2009)에서는 돌에서 나는지 안 나는지 모를 소리에 마이크를 밀어붙여 돌의 소리를 소리화 합니다. 소리가 없다는 말은 말 그대로 소리가 없다고 여기겠지만, 역으로 없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그의 사운드 작업은 아날로그 매체가 들려주는 소리들을 탐구 하는데요. 라디오 주파수에서의 소음, TV의 딜레이를 통한 잡음, 심지어 정글짐에서 나는 소리까지도 예술의 영역 안으로 불러들입니다. 존 케이지(John Cage)가 주변에서 편히 들리는 일상 소리를 음악화 했다면 전형산은 일상에서도 듣기 싫어 디지털이 걸러낸 잡음들을 음악화 하고 있습니다. <선험적 편린들 #6; Meter>(2014)는 계량기가 작동하고 있는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을 하나의 비트로 파악하고 소리를 확대합니다. 더군다나 관람객은 콘센트를 꽂고 빼고를 하면서 계량기의 비트를 조율 하지요. 이 작품에서 들리는 소리는 인식 이전의 소리와 이후의 소리로 나뉩니다. 즉 계량기의 굉음이 비트라고 생각하는 순간 관람객들의 소리에 대한 인식은 확장됩니다.

다른 측면으로 주목할 지점은 작가가 아날로그 소리를 사회적 구조영역까지도 의미를 생산해내고 있다는 점인데요. <불가항력적인 지각 #6; Arbeit macht frei>(2010)는 피아노 치는 행위를 노동의 행위로 환산합니다. 피아노에 망치를 조합해 피아노 본연의 소리보다는 제3의 소음이 생산되는데 타자로서 노동자는 소리의 타자인 소음과 연결됩니다. 노이즈를 계속 소리화하고 있는 작가는 이제 노동자들 또한 타자의 수렁에서 건져 내려 하고 싶은 걸지도 모릅니다. 반면 석성석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가장 큰 차이인 분절과 연속성을 바라보며 연속성이 분절됨에 따라 분절과 분절의 버려진 것들에 대해 작업으로 말합니다. 작년에 열린 그의 개인전은 아날로그 TV에서 나타나는 전자 신호에 대한 의미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전자신호의 잡음은 디지털로의 전이 과정 중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사라졌던 것들이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잡음들을 시각화함에 따라, 잡음의 부재 시대인 오늘날의 그 잡음들은 더는 잡음이 아닌 잡음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시각화인 셈 이지요. 그의 아날로그 TV에 대한 실험들은 단순히 신호를 보여주는 것에 멈추지 않고 신호를 주고, 받고, 멈추는 과정을 통해 부재했던 신호 체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호에 대한 정체성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부재하고 있는 목소리의 정체성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두 개의 시대가 왔다가 사라지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오늘날, 이 둘의 비교는 서로에 대한 과잉과 부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직은 디지털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인 만큼 디지털의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고효율, 자동화의 극한을 추구하면서 인간의 가치는 점점 등한시되고,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 철저히 적용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래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은 서로를 견제하고 자극할 것이 분명합니다. 상호에 대한 피드백은 쌍방향으로 해체시키고 다시 재구성할 것이고 노이즈가 정보가 되듯 언제고 전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현재의 아날로그 매체의 탐구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언제고 주목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 with ART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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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 Hamilton <The event of a thread> 2012 Installation shot of Park Avenue Armory commission photo by James E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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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woo Yang <Sight Monument Scene2> 2010 Object, mixed media 450×400×3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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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young Park <Auto-hypnosis Machine> 2012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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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uk Yang <Fatigue always accompanying a dream> 2013 Wood, thread, motor, pvc 2,300×2,800×2,300cm Photo: Nam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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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 Hatoum <Undercurrent(red)>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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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ware <Memoirs> 2010 Vintage monitor, polaroid camera 50×50×1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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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jin Kim <Sound Sculpture> 2014 Phantom Sign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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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maeno <thxxxxx> 2011 Wood, electronic component, iron pipe, stainless, fabric, pressure sensor, rf-transmitter-receiver, amp speaker, DC motor dimensions variable (2014 installation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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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gsan Jun <apriori bits #3 ; Radius> 2014 Mixed media sound installation (radio receiver, transmitter, typewriter, coil, motor, spea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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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a Choi <PM-1b> 2010 Mixed media 250×105×2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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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joon Lee <Europa Landing Gear(Drawing)> 2012